요즘 신문은 연일 지방의회 원구성의 파행을 알리는 기사로 도배를 한다. 며칠 전 열린 민주통합당 여성위원회 발족식에서 만난 의원들의 말을 들어도 각 지역마다 원구성에 어찌나 잡음이 많은지 감탄할 지경이었다. 어느 지역은 싸우다가 아예 원구성을 못하고, 어느 지역은 의장만 뽑아놓은 채 손놓고 있으며, 어느 지역은 애초의 약속과 달라 원구성을 미루고 있다고 한다.
이러한 문제는 도대체 어디에서 연유하는가? 의원들은 왜 그리 의장이 되고 싶어하는가? 의장은 발언권이 없다. 조례특위에 들어오지도 않고 예결산심사장에도 행정사무감사장에도 들어오지 않는다. 의장이니 힘든 일은 하지 말고 중립을 지키라는 뜻인가 보다. 의장과 평의원은 대우에 있어서도 많은 차이가 난다. 어찌 보면 넉넉한 업무추진비를 가지고 평의원들과 구분된 좋은 관용차를 타고 다니며 가장 하는 일이 없어 보이기도 한다. 전반기에 부의장을 해 본 나는 부의장의 역할이 별로 없다는 것을 안다. 의장이 없을 때 의장을 대신하는 경우를 제외하곤 모두 의장 중심이기 때문이다. 예산쓰기 위해 도장찍는 일, 의사봉 두드리는 일 등을 비롯해 중요한 일은 모두 의장이 결정한다. 시장도 의장하고만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는 것 같다. 의회가 독재적으로 가느냐, 민주적으로 가느냐도 거의 모두 의장이 할 탓이다. 의장을 하고 나면 다음 공천에도 가산점이 있는 모양이다.
의원은 시민들을 대표한다. 시민을 대표하는 의원들을 대표하는 것은 의장이다. 고로 의장은 시민들을 대표하는 지역의 ‘얼굴’이다. 이렇듯 우리를 대표하는 의장을 뽑는 일은 중요하고도 신성한 일이다. 그러나 각 지역의 원구성 과정을 보면서, 나는 지방의회야말로 가장 후진적인 선거방식을 가졌슴을 절실하게 깨달았다. 의원들은 의장이 되기 위해 탈당도 불사한다. 물론 시민들은 이 정도에 이르기까지의 복잡한 인과관계를 모르고 동료들끼리 이전투구한다고 비난한다. 원구성과정에 후보등록제나 정견발표제가 제도화되지 않았기 때문에 시민들은 알권리를 배제 당한 채 ‘누가 나온다더라, 누가 뭐한다더라’는 소문만 듣고 추측을 할 뿐이다.
이 중요한 의장단 선거가 의원들끼리만 담합하고 야합하는 수준에서 이루어진다는 사실은 정말 유감이다. 왜 의장단 선거가 짜고 치는 고스톱이 되어 이번엔 내가 하고 다음엔 네가 한다는 ‘룰’에 얽매여야 하는가? 시장이나 국회의원은 왜 돌아가면서 하지 않는가? 어떻게 의장선거가 시험을 앞둔 중고등학생들이 ‘초치기’하듯 투표당일 아침에 이 사람이 의장에서 저 사람이 의장으로 둔갑한단 말인가? 그것은 진정으로 시민을 대표할 사람을 오래도록 고민한게 아니라는 증거아닌가? 어떻게 한번도 의장이나 부의장을 꿈꿔보지도 않았던 사람이 어부지리로 의장이 되고 부의장이 되는 일이 일어나는지.
의원이 되고자 마음먹고 뺏지를 단 사람들은 나름대로 자부심과 꿈이 있을 것이다. 그런 의원들을 거느려야 하는 의장단이 현재와 같은 선출방식으로 이루어진다면 당연히 의회는 ‘식물의회’가 될 것이고 시민들은 의회를 신뢰하지 않을 것이다.
2050 클럽가입을 운운하는 이 시대에 시대착오적인 행태를 거듭하는 비민주적이고 후진적인 시스템을 가진 지방의회는 이제 변해야 한다. 전반기가 되었든 후반기가 되었든 의장이나 부의장이 되고자 하는 사람은 후보등록을 하고 동료의원과 시민들 앞에서 정정당당하게 정견을 발표해야 한다. 그리하여 당선 후에도 시민들의 올바른 평가를 받을 수 있도록 말이다.
최 인 혜 오산시의원·국제관계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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