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 자신이 교사라면, 학교에서 수업시간에 계속 떠드는 학생이 있다면 어떻게 하겠는가? 몇 번 주의를 주었는데도 계속 떠드는 학생이 있다고 가정하자. 집안 문제가 있는가를 살펴봤더니 특이사항도 없다. 계속 떠들어 반성문을 적게 하였는데, 이마저도 안하겠다고 달려든다. “선생님에게 이렇게 대드는 것이 잘된 행동이라고 생각하느냐”고 물었더니, 바로 대든다. “학교 안다니면 될 것 아니냐!”고 소리를 지른다. 어떻게 할 것인가?
이 경우 많은 교사들은 학생의 행동을 이해하지 못한다.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그냥 참는다. 참고 참고 또 참아서 문제가 해결되면 좋으련만, 현실은 그렇지가 못하다. 참고 또 참고, 또 참으면 스트레스를 받아서 견딜 수가 없다. 교무실에서 그 반에 들어가는 장면만 상상해도 머리가 아플 지경이 된다. 수업시간에는 그저 못본 척 하고 지내는 것이 최상이라는 생각과 이런 학생들을 왜 도와주어야 하는가에 대해 회의감만 느끼게 된다.
이때 우리는 학생을 이해하지 못하게 되고, 결과적으로 화를 내게 되고, 교사로서의 권위마저 상실하게 된다. 화를 내고 나서야 자신의 권위가 떨어졌음을 깨닫는다. 반대로 자기 표현도 제대로 못하고 억울하게 무시당하고 나서야, 속상할 때도 있다.
무작정 타이른다고 해결 안돼
집에서도 마찬가지이다. 공부를 하라고 말했더니, “당신이 내 인생을 살아주느냐? 내 인생 알아서 살겠다”고 자녀가 대든다고 가정해 보자. “부모에게 당신이라고 말하는 것이 올바른 일이냐”고 물었더니, “그런 것은 관심없다”고 대답한다. 어떻게 할 것인가?
자녀의 행동을 이해하고, 적절히 대응할 수 없는 경우, 부모로서의 권위를 상실하게 된다. ‘내가 어쩌다가 이렇게…’ 하는 한숨만 쉬게 될지도 모른다. 이럴 때 우리가 어른으로서 어떻게 해야 할까?
어린 사람이 잘못된 행동을 했을 때. 공감을 통해 스스로 부끄러움을 느끼게 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흡연이나 음주 등 품행 문제를 저질렀을 때, 이런 학생들에게 잘못을 지적하면, 상대편은 자기보호를 위해 방어적 시도로 합리화를 하게 된다. 즉, “어른들은 하면서 우리는 못하게 한다”거나 “남들에 비해 나는 사소한 편”이라는 식의 논리를 만들어 내게된다. 그리고 다음에는 별 미안함이나 부적절감을 느끼지 않는다.
잘못된 행동에 대해 댓가를 지불했다는 생각이 들면, 비행청소년들은 떳떳해진다. 왜? 자신의 행동에 대해 댓가를 지불했기 때문에. 그리고 이것을 마치 하나의 자랑거리처럼 여긴다. 다음에는 더욱 심한 행동을 가하게 된다.
공감 통해 부끄럼 느끼게 해야
잘못된 행동을 했을 때는, 학생으로 하여금 부적절한 행동에 대해 스스로 느끼는 감정을 알아차릴 수 있도록 공감해 주어야 한다. 최초의 일탈행동에 있어서는 누구라도 자신이 적정선을 벗어났음을 알고, 당황해하고, 부끄러워한다. 이 마음을 스스로 확인하고 느낄 수 있도록 돕는 일이 매우 중요하다.
담배를 피는 학생에게 눈을 맞추고, 따뜻한 시선을 보낸 다음, 손을 한번 잡아주는 일은 학생이 스스로의 감정에 접촉하게 돕는다. 이는 공감적 행동을 통해 스스로 미안함을 느끼게 만드는 일이다.
모든 문제행동 뒤에는 긍정적 동기가 숨어있다. 학생들이 문제 행동을 할 때에는 자신이 관심을 받고 싶거나, 힘이 세다는 것을 보이고 싶거나, 자기 마음대로 행동하고 싶은 욕구가 있거나 하는 것을 나타내 보이고 싶은 것이다. 이런 동기를 이해하는 일이 어른들이 할 일이다.
차명호 평택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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