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년 전 쯤 아래 지역으로 출장 갔을 때 일이다. 급히 내려오느라 미처 챙기지 못한 물건을 사기 위해 밖으로 나왔다. 젊은 주부로 보이는 분이 지나가 길래 얼른 물었다. 여기 슈퍼가 어디 있어요? 네? 목소리가 작았나 싶어 좀 더 큰 소리로 물었다. 네, 슈퍼요. 물건 파는 곳인데…. 그러자 그 분은 아! 마트요! 라며 손을 들어 가는 길을 가르쳐주었다.
슈퍼를 모르다니. 어이없었다. 그런데 마트라는 말을 처음 듣는다는 생각에 묘한 느낌이 들었다. 그러고 보니 대형 유통판매점은 OO마트라는 이름을 달고 있다는 것을 뒤늦게 깨달았다.
얼마 전만해도 규모와는 상관없이 OO슈퍼 혹은 OO슈퍼마켓이라는 간판을 한 가게가 동네마다 하나 이상은 있었다. 소소한 필요는 그곳에서 해결할 수 있는 작지만 큰 가게였다. 기억을 더듬어 보면 허름한 쌀집에 담배라고 쓰인 파란색 양철 표지판이 밖을 향해 붙어있던 슈퍼가 있었다. 과자와 빵, 라면, 아이스크림과 같은 인스턴트식품이 추가되면서 슈퍼마켓이라는 이름을 붙였던 것 같다. 동네에 대형 상점(슈퍼마켓)이 생기자 판매 상품을 늘리면서 슈퍼가 된 것이 아닌가 싶다. 그러나 여전히 나에게는 슈퍼라고 말하고 구멍가게로 기억되는 콤콤한 냄새가 묻어있는 곳이다.
점점 사라져가는 동네 사랑방, 슈퍼
구멍가게는 동네를 연결하는 여러 개의 골목이 모이는 꼭짓점과 같은 곳에 자리했었고 물건만 파는 것이 아니라 주민들의 대소사가 모이는 정보의 집결지이기도 했다. 슈퍼 옆 그늘 좋은 나무 아래가 여름 휴식처라 치면, 구멍가게 안은 겨울 사랑방이었다. 이곳을 지나가는 젊은이들은 목례라도 하지 않으면 뒤통수가 근질거려 얼른 벗어나고 싶었던 이곳….
동네에서 일어나는 대소사는 느티나무 아래에서 그리고 슈퍼에서 깊숙한 동네까지 시시콜콜 전달되곤 했다. 작지만 주민들 나름의 훌륭한 해결방안을 고민하고 실천을 논의했던 라운드테이블인 셈이었다. 요즘 언어로 고쳐 말하면 지역주민들이 소통하는 공간이고 동네 이슈를 의제화하는 공동체 모임이 이루어지는 회의 공간이며 동네 낮선 사람이 어슬렁거리면 경계경보를 발신해주던 곳이었다. 조금 더 오버(?)하면 동네를 지켜주는 훌륭한 사회안전망 역할을 했다고 생각한다.
평안한 일상·안전 위한 공동체 필요
요즘 들어 사회 안전이 필요하다는 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이러저러한 사건들은 사람들을 더욱 불안하게 만들고 있다. 사람으로 사람답게 살려면 혼자여서는 불가하다. 삶의 환경이 각박해질수록 공동체에 대한 욕구는 깊어진다. 마트의 위력에 사라진 동네슈퍼나, 느티나무가 심어진 땅의 소유자에 의해 나무그늘도 사유화되어버리는, 사적재산보장이 최우선 되는 지금 사회에서 돈이 아니라 내 일상을 지켜줄 또 다른 방식이 필요하다. 주머니에 몇 천원이라도 있어야 잠시 엉덩이 붙여 쉴 수 있는 공간이 확보되지 않는가. 동네의 평안한 일상은 어디에서 오는 것인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그 해답을 작은 모임의 공동체에서 찾고 싶다. 방식은 모두 다르게 나타나겠지만 동네에서 우리의 일상을 즐겁게 보내기 위한 우리만의 전략을 진지하게 고민할 때이다.
민병은 ㈔한국문화의집협회 상임이사아침을 열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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