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춘추] 감정노동

유명 연예인들이 수술할 때 마취제로 사용하는 프로포폴 투약 혐의로 조사를 받고 있습니다. 연예인들의 마약 투약을 옹호하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지만 한편으로는 그 처지가 딱하기도 합니다.

연기는 감정노동입니다. 그리고 배우는 감정노동자입니다. ‘감정노동’이라는 말은 미국의 사회학자인 앨리 러셀 혹실드가 처음 사용했는데 자신이 느끼는 감정을 억누르고, 자신의 직무에 맞는 행위를 요구받는 것을 말합니다.

감정노동은 다른 사람들의 기분을 좋게 하려고 자신의 감정을 고무시키거나 억제해야만 하기 때문에 크든 작든 정신적 스트레스를 수반하게 됩니다.

간호사, 은행원, 식당 종업원, 전화상담원 등 우리 주위에는 배우 말고도 감정노동을 수행하는 사람이 매우 많습니다. 미국의 경우 여성의 반 이상이 감정노동을 수행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직업을 떠나 우리 모두가 감정노동으로부터 자유롭지 않습니다. 전에 일하던 곳에서 새로 직원을 채용한 적이 있습니다. 부드럽고 따뜻한 미소를 띤 첫인상이 참 좋았습니다. 그런데 같이 일하면서 지켜보니 입은 웃고 있는데 눈은 울고 있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궁금해서 이유를 물어보니 전에 백화점 엘리베이터에서 근무했는데 그때부터 웃도록 훈련된 것이 그만 둔 이후에도 굳어져서 노력해도 고쳐지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저 역시도 비슷한 경험을 했습니다. 자신보다는 일과 사회에 대한 관심이 우선하는 저를 안타까워하던 어떤 분의 권유로 한동안 심리치료를 받은 적이 있습니다. 주변 관계로부터 해방되어 오롯이 ‘나’에게만 집중한다는 것이 새로운 경험이고, 해방감 비슷한 것도 느껴져서 2~3년간 집중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두고두고 잊을 수 없는 사건이 벌어졌습니다. 심리치료 선생님이 저에게 대뜸 ‘너는 갈보야!’라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시도 때도 없이, 심지어는 웃지 말아야 할 때도 웃는 모습이 그렇게 보인다는 얘기였습니다. 평소에 잘 웃긴 하지만, 주로는 웃음소리가 참 좋다는 얘기를 들어온 터였는데 ‘갈보라니!’, 어이가 없어 따졌지만 소용없었습니다.

그러나 집에 돌아오는 길에 그 얘기가 다시 생각나면서 이번에는 눈에서 절로 눈물이 줄줄 흘렀습니다. 그동안 스스로의 느낌보다는 다른 사람에게 맞춰온 제 모습이 거울처럼 들여다보였습니다.

어떤 사람이 중국 여행길에 들른 카페에서 젊은 직원들이 서빙을 하는 틈틈이 수다를 떨고 깔깔 웃는 모습을 보며, 손님들의 분위기로부터 자유로운 직원들의 모습이 부러웠다고 한 얘기가 기억납니다. ‘감정노동’에 대해 귀를 기울이고, 치유를 위해 함께 고민하는 우리가 되기를 기대합니다.

 

이 병 학 경기광역자활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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