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춘추] 정의란 무엇인가?

1984년 12월3일 새벽 인도 보팔시. 다국적기업 유니온 카바이드사에서 독가스가 유출돼 4천여명의 생명이 영문도 모른 채 쓰러졌고 2~3년 안에 2만여명이 더 목숨을 잃었다.

삼성전자 불산누출사고를 30년 전 인도 보팔참사와 비교해보면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지 않을 수 없다. 규모만 달랐지 안전관리미비, 관리감독부실, 위기대응 혼선이 초래한 재앙이라는 점에서 닮은꼴이기 때문이다.

삼성전자 불산사고의 환경 당국인 경기도와 김문수 지사도 시험대에 섰다. 부실한 안전점검으로 경기도의 관리감독에 구멍이 났고, 사고 신고를 접수한 즉시 보고해야 하는 국가비상대응 관련 법규도 지키지 않은 사실은 이미 드러났다.

국민의 관심은 인명피해가 난 2010년 불산누출 사고를 2년4개월이나 은폐한 채 신고하지 않은 삼성전자에 대해 김지사가 과연 제대로 행정처분을 내릴지에 쏠려 있다. 사고를 신고하지 않은 사업장은 법상 강제규정으로 유독물질 취급 사용등록을 취소하도록 돼 있고, 그 권한은 시·도지사에게 있다.

 

그러나 우리 사회가 어디 법대로만 되는 사회였던가. 당장 이 문제는 ‘법의 정의’와 ‘경제적기여’라는 두 가지가 정면충돌한다. 김지사는 등록 취소와 면죄부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김지사가 어떤 선택을 할지 예단하긴 힘들지만 아마도 법대로 하자니 공장을 멈춰야 하고 2만4천여명의 직원과 협력업체 직원, 경제적 파급 효과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고 이미 자기최면을 걸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한 가닥 기대를 품는 이유는 공인들의 말 때문이다. 김지사는 “삼성 잘못이 드러나면 책임을 철저히 물을 것”이며 “확인될 경우 관계규정에 따라 처벌하겠다”고 공언했다. 또 박근혜 당선인은 “유전무죄 무전유죄 관행을 바로잡아야”한다고 했다.

만약 김지사가 삼성에게 면죄부를 준다면 법의 정의, 기업의 윤리의식, 사회적 책임성이 하는 가치들은 설 자리가 없게 된다. 도지사가 나서 대통령 당선인의 말을 정면으로 뒤집는 역린이 되는 것은 물론이다. 두고두고 우리 사회 유전무죄의 상징적 사건이 될 것이다. 법의 정의를 바로 세우는 핵심은 공평하게 법을 적용하는 것이다.

대기업에게 쓰는 법 따로 있고, 약자인 서민에게 쓰는 법 따로 있어서야 누가 법을 믿고 따르려 하겠는가. 이런 사회에서는 법의 안정성도 심각하게 훼손될 수밖에 없다. ‘정의냐, 경제냐’의 갈림길에서 깊은 시름에 빠져 있을 김지사에게 로마의 법언을 꼭 들려주고 싶다. “세상은 망하더라도 정의는 세우라(Fiat justitia, et pereat mundus)”

 

양 근 서 경기도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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