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부인과 대기실에 앉아 있는데 “딸이에요”라고 알려준 뒤 사라지는 간호사를 보며 대뜸 무척이나 실망하실 장모님 얼굴이 떠올랐다.
장모님은 외동딸이 시집가서 위로 딸을 낳은 뒤 매일 기도와 보약을 챙겨주시면서 다음엔 꼭 아들을 낳아서 시가에서 대접받고 떳떳하게 살라고 강조하셨는데, 소원을 이뤄 드리지 못해 죄송하고 부끄러웠다.
1984년 모질게도 추웠던 겨울날 대전에서 둘째로 태어난 딸이 몸무게도 2.8㎏으로 약하게 태어나 항상 엄마 마음을 조마조마하게 하며 자라던 딸이 지난 16일 결혼식을 올리고 부모 곁을 떠나 한 가정을 이뤘다.
우리 집에서 어쩌면 큰 축복도 못 받고 귀여움도 못 받았던 딸이 30년간 함께 생활하다 이제 완전히 독립을 선언한 기념일이다.
둘째딸이 먼저 독립을 선언하니 큰딸 보기가 어색하기도 하고 기뻐해야 하는데 마냥 기쁘지도 않고 기분이 좀 서글프다. 딸을 가진 부모는 다 이런 마음일 것이다.
문득 둘째딸의 중학교 3학년 때 일이 기억난다. 어느 날 누군가 찾아와서 나가보니 커다란 꽃다발을 든 잘생기고 착해 보이는 남학생이 딸의 남자친구라며 찾아왔다. 나는 그 아이를 붙잡고 고맙다고 말하며 서로 좋은 대학가서 사귀면 좋을 것 같다고 점잖게 일러주고 돌려보낸 적이 있다.
어린 시절부터 남학생들에게 인기가 많았던 딸인지라 대학에서도 인기가 있었는지 대학 때 만났던 친구를 평생 살아갈 배필로 정하였다. 이제 생을 같이할 한 남자를 만났으니 내 마음의 여유로움이 자리 잡을 만 하련만 딸의 손을 잡고 식장에 입장할 때는 마음 한구석이 텅 빈 것 같은 느낌이었다. 기쁨과 서운한 마음이 교차하면서 마음이 아려오는 것을 억지로 참고 예식을 마쳤다.
텅 빈 딸의 방에 들어가 남겨놓은 물건들을 살펴보면서 이제서야 고인이 되신 장모님의 마음을 헤아려 본다. 외동딸을 나에게 보내면서 두 분이 마음속으로 얼마나 우셨을까.
그토록 귀한 딸을 필자에게 시집 보낸 장모님이 한평생 살다 돌아가시는 날까지 마음을 헤아리지 못한 점에 대해 속죄하고 싶다. 혼자 남은 장인어른을 제대로 돌보아 드리지도 못하고 있으니 그것 또한 큰 죄가 아닐까 싶다. 늦었지만 두 분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한 사위의 깊은 사죄를 드린다.
이제 부모 곁을 떠난 나의 딸이 그리고 세상 모든 딸들이 나이를 먹고 성장하면서 자식을 낳아 출가시킬 때가 되면 지금의 부모 마음을 그대로 이어받으리라. 텅 빈 마음을 위로하며 소박한 소원을 빌어본다. “딸아 딸아 부디 행복하게 살아다오.”
임 재 욱 경기도농업기술원장
로그인 후 이용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