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회가 시작되었습니다. 작품에 대해 이야기하고 질문하고 그 질문에 답하는 형식이었습니다. 지나치게 과장된 부분은 없는지, 시대를 잘 담아내었다고 생각하는지, 소설가라는 직업인으로서 사회적 책무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지 등의 주제가 담긴 질문들이었습니다. 이어 토론장을 절반쯤 채운 독자들의 질문 차례가 되었습니다.
나이 오십이 되도록 지금껏 신춘문예에 응모하고 있는데 계속 도전하는 게 옳은가라는 질문에서부터 애완견은 키워봤느냐, 소설 속 배경으로 등장하는 직업들을 실제 경험해 봤느냐, 등장인물들이 실존 인물들이냐는 질문까지 별별 질문과 감상평들이 다 나왔습니다. 그 중 제가 지금껏 잊지 못하는 감상평이 하나 있었습니다.
“10년쯤 전에 남편 하던 일이 어려워진데다 사고까지 당하면서 아이들하고 힘들게 살아오고 있어요. 하루하루를 기적처럼 죽지 못해 살아온 겁니다. 이대로 사는 걸 그만둘까 싶을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책을 보고 망설이다가 잠깐 짬을 내서 어렵게 여기까지 왔습니다. 제가 궁금한 건, 희망을 갖고 살면 작은 꿈이나마 이루어질까하는 겁니다.”
그 여자 분은 울먹이며 말했습니다. 말하는 도중에 눈물을 삼키기도 했습니다.
한번은 그런 일이 있었습니다. 2003년 여름 외국에 나가있던 동생이 사고로 죽은 일이 있었지요. 반년 가까이 일만 해주고 비용을 받지 못해 카드로 살았던 삶이 펑크가 나면서 신용불량자가 되어버린 시절이었습니다.
노동판에 나가 아무리 열심히 벌어 갚아도 도무지 빚이 줄지 않는 상황이었습니다. 간혹 일이 없을 때도 있었습니다. 그런 날 집에서 못다 쓴 소설 원고 붙잡고 씨름을 하곤 했는데 외국의 대사관으로부터 전화를 받았던 겁니다. 동생이 사고로 죽었다고. 그런데 그때 인터넷은 물론이고 휴대폰과 집 전화 역시 요금 미납으로 정지되어 있는 상태였고 수신만 가능했습니다.
게다가 주머니에 돈이라고는 단돈 십 원도 없었습니다. 긴 막대자로 농 밑을 뒤져 겨우 백 원짜리 두 개를 찾았습니다. 그 돈으로 거리의 공중전화를 찾아가 형제들에게 동생의 죽음을 알릴 수 있었습니다. 그때 과연 이렇게 살아도 되는가 싶었습니다.
꿈이나 희망 따위가 뭐라고, 사람 노릇도 제대로 못하면서 살게 하는 걸 꿈이나 희망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싶었던 겁니다. 그 후로도 어려운 고비들이 많았습니다. 그로부터 10년 뒤 저는 상을 받았습니다. 견디지 못했다면 아마 지금의 저는 없었겠지요.
저는 어느 인터뷰에선가 그런 말을 했습니다. 인간이 가장 인간다운 것, 인간의 존엄을 지킬 수 있는 건, 사는 게 아무리 고달파도 살아내는 것이라고 생각한다는 말을 했습니다. 독서토론회에 참여했던 그 여자 분에게도 그 말을 해주었습니다. 저 역시 죽고 싶을 정도로 괴로웠던 시절과 그걸 견뎌온 시간에 대해서 말이죠.
오늘도 뉴스에서 자살한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토론회 마지막 순서는 사인회였습니다. 그 여자 분이 아들 손을 잡고 찾아와 책을 내밀더군요. 그분이 내민 책에 그런 말을 적어 드렸습니다.
‘강한 의지로 살아만 있으면 꿈꾸던 일은 이루어질 겁니다.’라고. 허무맹랑한 이야기일까요? 허무맹랑한지 모르겠지만 저는 믿고 살아냈지요. 설령 허무맹랑한 이야기이더라도 그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살아 있어야 꿈도 꿀 수 있으니까요.
전 민 식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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