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삽도 못뜬 택지개발… 슬럼화 부채질 [슈퍼갑LH 서민은 고달프다] 3. 화성 비봉지구 무분별한 사업 추진
수년째 개발행위 제한돼 비 새는 집조차 수리 못해
땅 매입 위해 대출받은 주민은 눈덩이로 불어난 이자에 허덕
“공산국가도 아니고 대한민국에서 사유재산을 수년간 묶어 논다는 게 말이나 됩니까”
5일 화성시 비봉면 삼화리와 구포리 일대는 적막감이 감돌았다. 곳곳에서 담이 무너져 내리고 지붕에 기왓장이 어지럽게 널려져 빗물을 막기 위해 비닐 천막으로 덮혀져 있는 가옥들이 눈에 띄었다.
비봉지구는 지난 2007년 4월 화성시 비봉면 삼화리와 구포리 일원 86만3천㎡에 6천362가구(1만7천178명) 규모의 택지개발사업지구로 지정된 이후 사업진행에 별다른 진전이 없다.
사업이 장기화되면서 비봉지구는 개발행위가 제한됨에 따라 쓰러져 가는 담을 보수하는 것은 물론 비가 세는 지붕마저도 고치지 못해 슬럼화되고 있다.
후했던 인심은 사라진 지 오래고 주민 간 불화는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다. 빚더미에 앉은 일부 주민들은 희망도 미래도 없는 절망속에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주민 A씨는 “7년이 지난 지금에 와서 LH에서는 감사원의 감사 지적에 따라 수요 예측 조사를 다시한다고 한다. 억장이 무너진다”며 “누가 죽어나가야만 우리들의 어려운 사정을 알아 줄 것이냐”고 울분을 토로했다.
빚에 허덕이는 주민들의 인내심도 한계에 달했다. 수십년간 살아온 집과 농지가 경매로 넘어가고 토지 매입을 위해 수억원을 대출했던 주민들의 대출이자는 산더미 같이 늘어만가고 있다.
실제 고향으로 귀농했던 B씨는 농사를 짓기 위해 은행에서 대출을 받아 작물재배를 시작했지만 경제성이 떨어져 빚만 늘었다. B씨는 궁여지책으로 토지를 매매하려했으나 택지지구로 지정돼 토지 처분이 불가해지면서 10억원에 육박하는 빚더미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다. 또 보상을 믿고 이주 예정 지역에 토지를 매입한 C씨도 3억여원을 대출 받았지만 사업 지연으로 대출이자를 감당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사업 시행을 준비했던 건설사나 투자자들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D건설사는 지구지정 이전에 이 지역에 토지를 매입했다가 큰 손실을 보고 사실상 사업을 접어야 할 상황이다. 또 지구지정 이전에 대출을 받아 이 지역에 토지를 매입했던 투자자들도 사업 지연으로 빚만 늘어나고 있다.
사업축소로 사업 지구서 제외되는 지역 주민들도 고통을 감수하고 있다. 화성시가 지난해 1억3천만원의 예산을 수립해 구포2리에 마을회관을 건립할 예정이었지만 개발행위가 제한돼 예산을 반납해야 했다.
주민 E씨는 “조상 대대로 수십, 수백년간 살아 온 터전을 떠나야하는 것도 억울한데 개발이라는 ‘미명’아래 주민들의 삶을 완전히 망가뜨려놔도 되는 것“이냐며 “지구지정이후에 사업 진행이 어려우면 지정을 해제했다가 다시하면되지 밑도 끝도 없이 수년간 재산권을 행사하지 못하도록 잡아 두는 것은 주민들은 안중에도 없고 다 죽으라는 소리나 다름없다”고 분개했다.
구포1ㆍ2리, 삼화리 등 비봉지구 이장단은 “더 이상 택지개발계획 승인을 미루다가는 주민들이 한계 상황에 부딪혀 큰 혼란이 야기될 수 밖에 없다”며 “기존 사업이 축소된다면 사업지구에서 제외된 지역은 승인 이전에 개발행위를 할 수 있도록 하루라도 빨리 확인서나 허가서라도 발급해 달라”고 요구했다.
LH 관계자는 “감사원 지적에 따라 면밀한 수요검토를 위해 수요조사 용역(기간 4월22일)을 시행하고 있다”며 “연구용역 결과를 토대로 올해 하반기 중 개발계획 승인을 얻어 사업이 정상화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최원재기자 chwj74@kyeong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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