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정치인이 어부에게 말했습니다. ‘바구니에 뚜껑이 없군요. 그러면 게들이 다 도망칠 텐데요.” 그러자 어부는 태연히 말했습니다. “아무염려 없습니다. 이 게들은 정치인과 비슷한 놈들이라서 한 마리가 기어오르면 다른 놈들이 다 끌어내립니다. 다른 놈들이 올라가는 꼴을 보지 못하거든요.”
한태환 목사의 명설교 모음 중에 나오는 얘기다. 작금에 전개되는 정치의 몰염치가 이 설교를 다시 떠 올리게 한다.
정부조직법 개정안 처리를 위한 여·야의 기싸움은 방송과 통신의 융합이 얼마나 중요한 문제인지 잘 알지도 못하는 국민들에게는 참으로 괴이하게 다가든다. 의견에 다름이 있다면 여·야간에 소통하여 해결방안을 마련해야 할 것이지 이를 옳고 그름의 문제로 부각시켜 소싸움 하듯 다투고 있는 탓이다. 이 또한 종국에는 벼랑 끝 타협으로라도 처리되리라 믿고 있지만 헌정사상 초유의 식물정부를 우려해야 하는 국민들의 인내는 길고 아프다.
미래창조과학부 업무관장의 범위를 두고 여·야가 날카로운 신경전을 벌리며 힘을 쏟은 탓에 새 정부 장관 내정자들에 대한 청문회는 세간의 관심에서 멀어지고 말았다. 검증의 이름으로 수모와 굴욕의 포를 뜨고, 정의란 이름으로 침을 튀겨 민얼굴을 닦달해 보지만 식상한 잔치에는 이미 카타르시스마저 없었다. 웬만한 맷집과 둔감력의 소유자가 아니고서는 린치에 버금가는 그 난무하는 언어의 돌팔매를 견디기 힘들 터임에도 내정자들 모두 잘 이겨내며 생존에 성공했다. 신기했고 또 씁쓸했다, 그 뒷맛은.
유감은 또 있다. 김종훈 미래창조과학부 장관 후보자의 갑작스런 사퇴다. 살아있는 벤처신화요 아메리칸 드림을 일군 아이콘으로 평가받아 대통령이 삼고초려 하여 영입하였다는 사람이 훌훌 다 털고 미국으로 돌아가 버렸다. 과학기술과 정보기술을 융합, 이를 산업 전 분야에 접목함으로써 일자리를 창출하고 경제발전을 추진하려던 새 정부의 구상이 출발부터 삐걱거리고 있다.
김 전 후보자의 사퇴를 지켜보며 사회일각에서는 처신의 가벼움을 들어 비난의 시선을 보낸다. 조국을 위해 봉사·헌신하겠다던 그 다짐이 국내의 정치 환경을 이겨내기 힘들다며 단 보름 만에 포기되고 산산조각 날 만큼 가벼운 것이었는지를 추궁한다.
그러나 미국 국적을 포함 많은 것을 버리면서 조국에 봉사하려 작심했던 그에게 어쩌면 우리 정치풍토가 지나치게 속좁고 야박하여 그 소박한 뜻을 꺾어버린 것은 아닌지 하는 아쉬움도 같이 든다. 그로서는 조국이 자신을 인정하고 불러 왔을 때 분명코 그 가슴에 담아내며 밤을 지새웠을 뜨거운 각오와 약속은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곳 저곳에서 그를 비난도 하지만 그가 남긴 사퇴의 변에는 조국에 대한 애증과 더불어 스스로 삼키고 만 아픔도 덕지덕지 베어있는 듯 해 마음이 아린다. 700만 해외거주 교민들에게는 김종훈의 이런 후퇴가 어떤 의미로 각인되어 질지도 사뭇 안타깝다.
어쨌건 우리 정치권의 공방들이 희생자 위에서 쾌재를 부르는 뺄셈의 정치가 아니고 여·야 모두가 서로의 단점을 보완해 주는 덧셈의 정치로 거듭났으면 좋겠다.
이 태 희 前 법무부교정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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