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사회적인 이슈는 한국의 최초 여성대통령이다. 이 땅에서 여성이 나라를 리더해 나가는 일은 약 천여 년 만에 처음이다.
지금처럼 여성 리더십이 세계 곳곳에서 꽃을 피우기 이전 중국과 대만의 탄생에 큰 활약을 한 두 여성이 있었다. 그들은 바로 당시 중국 최고의 재력가 쑹자수(宋嘉樹)의 두 딸 쑹칭링(宋慶齡)과 쑹메이링(宋美齡)이다. 두 사람은 자매지만 다른 이념과 가치관으로 인해 다른 길을 걸었다.
당시 미국 유학길에 오르게 된 언니인 쑹칭링은 민족주의적인 성향이 강해 자신이 중국인임을 잊지 않았지만, 동생 쑹메이링은 서구문화를 동경해 자신이 중국인이라는 사실을 부끄러워했다. 이후 쑹칭링은 중국 건국을 위해 보탬이 되고자 하는 생각에 20살에 중국으로 귀국하여 중국 혁명의 선도자·정치가 쑨원(孫文)과 만나 본격적으로 정치적 행보를 시작했다.
하지만 쑹메이링은 중국이 무시당하지 않으려면 개방 개혁이 필요하다며 개혁 능력이 있는 국민당 장제스(蔣介石)와 결혼해 탁월한 언변과 가문의 재산을 이용하여 장제스에 대한 서방국가들의 지지를 끌어내고 개인 비서로 장제스를 보좌했다. 공산당과의 싸움에서도 중추적인 역할을 했다.
쑹칭링과 쑹메이링은 본격적으로 대립하기 시작했다. 쑹칭링은 마오쩌둥(毛澤東)과 손을 잡고 중국 전역에서 장제스 정권의 비리와 비민중적 정책을 폭로했다. 민심은 장제스에게서 멀어졌고 결국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이 설립되면서 쑹칭링이 부주석의 자리에 오른 것과 달리 쑹메이링은 장제스와 대만으로 쫓겨나 장제스가 사망하면서 뜻을 이루지 못한 채 정치 인생의 막을 내렸다.
서로의 이념은 대립했지만 전쟁에서 혁혁한 공을 세워 중국의 승리를 이끌어 낸 두 여성의 신념과 리더십은 대단했다.
필자가 여기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여성의 리더십이다. 한국은 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가운데 경제력은 상위권을 차지하였지만 성평등은 최하위에 머물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스위스의 세계경제포럼(WEF)이 발표한 2012년 ‘세계 성(性) 격차지수’를 따르면 한국은 0.6356점으로 조사 대상 135개국 가운데 108위를 기록했다.
또 여성가족부의 ‘2012년 한국의 성평등보고서’를 보면 여성의 임금 수준은 남성 대비 64.5%에 불과했으며, 노동자의 61.8%가 비정규직이고 고용보험 미가입률이 60%에 달했다.
‘남자는 하늘, 여자는 땅이다’라는 문구는 이제 옛말이다. 박근혜 여성대통령이 당선됨에 따라 한국도 여성시대가 열린 것을 기대하며 필자를 포함한 더 많은 여성이 사회에 진출하여 대단한 리더십을 펼치길 바란다.
후 홍 염 경기도 다문화가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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