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시론] 결혼식? 허세식?

봄이다. 새 생명의 계절이다. 아, 얼마나 기다렸던 봄이었던가? 그러나 봄만 아름다운게 아니다. 순백의 드레스와 면사포로 휘감겨진 봄의 신부는 또 어떠한가! 이제 막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새둥지를 찾아, 만인앞에서 새출발을 선언하는 우리 신랑 신부의 모습은 얼마나 눈이 부시던지.

며칠전, 이런 봄의 전령을 받고 한 지인의 아들 결혼식장을 찾았다. 겉보기와는 달리 여기가 결혼식장인지 아니면 그저 도떼기 시장인지 구분이 가질 않는다는 것이다. 그저 사람이 와글와글한 식장내에서 자기 가족을 찾아서 두리번두리번 거리는 사람과 그저 멍하니 서있는 사람들…. 들어서자마자 입장료를 내듯이 축의금 내는곳으로 우르르 몰려가는가 싶더니, 신랑 신부에게 축하한다는 덕담은 고사하고 얼굴도 보지 못한 채, 바로 식당으로 향하는 수많은 하객들…. 대부분의 하객들은 신랑이 누구인지, 신부가 누구인지는 관심도 없다. 사실 그들이 누구인지도 모르니까. 우리나라에서 혼례란 두 개인이 합친다는 의미보다 두 가족이 결합한다는 의미에 가까웠다. 우리나라의 결혼식에서는 결혼 당사자의 지인들뿐만 아니라 양가 부모님들의 지인을 비롯해 결혼 당사자가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까지 전부 초대한다.

결혼을 준비하는 신부나 신랑들이 친구가 없어서 돈을 주고 사람을 고용해 친구인 것처럼 부르는 경우도 왕왕 있다니 가관이라 아니할 수가 없다.

신랑 신부가 누구인지도 모르는데 진정 마음에서 우러나는 축하를 한다는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다. 또한 축의금을 무슨 입장료 내듯이 일괄적으로 내는것도 이상해 보인다. 문득, 이렇게 엉망으로 하는 것을 보니, ‘이렇게 할거라면 차라리 결혼식을 하지 않는 것이 더 낫지 않나?’ 라는 생각마저 들었다. 꼭 사람들 앞에서, 이렇게 할 필요가 있을까? 만약, 해야된다고 하더라도 제대로 형식을 거쳐서 좀 바뀌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결혼은 참으로 의미있는 행사라는 것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다. 사랑하는 두 남녀가 만나 앞으로 평생을 함께 살아갈 것을 많은 하객들 앞에서 공식적으로 알리는 것이 바로 결혼식이 지닌 의미이다. 개인에게든, 가족들에게든 그런 의미있는 행사를 단 30분 내에 후다닥 해치운다는 것도 또한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다.

새로운 가정을 이루어 나가는 출발점으로서 이러한 결혼 행사는 예식 당사자를 진정으로 축복해주는 성스러운 장이 되어야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의 결혼식 문화는 최대한 호화롭고 화려한 결혼식을 통해 자신이 얼만큼의 부와 어떠한 배우자를 소유하고 있는지 최대한 많은 사람에게 보여주기 위한 자기과시의 장으로 변질되어 가고 있다는 인상을 지울 수가 없다.

즉 하객들로부터 인정받기 위해 상류층은 중산층과 차별화된 형태로, 중산층은 상류층과 비슷하게, 서민층은 중산층에 버금가는 수준으로 결혼식을 치르려 한다는 것이다. 경제적 비용을 지불하는 대가로 사회적 인정을 받으려는 잘못된 의식을 바꿔야 할 것이다.

특히, 과시적 소비는 부유층과 사회지도층에서 시작돼 다른 집단으로 모방 확산되는 경향이 강하므로 건전한 혼례의 정착을 위해서는 가진 자와 지도층 인사들의 솔선수범이 제일 중요하다고 하겠다. 인생에서 가장 축복받은 결혼을 하면서도 허례허식에서 생겨난 과도한 결혼 비용, 혼수 때문에 축복받는 날이 아니라 주위 가정을 무너뜨리는 악몽의 날이 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진정한 결혼이란 우선 혼자 살기에는 불완전한 한 남자와 한 여자가 만나서 서로 의지하고 모자라는 부분을 서로 보완해주면서 인생의 모든 영역에서 친밀감과 공감대를 형성하는 동반자로서 삶을 같이 엮어가는 것이다.

이 아름다운 봄날에 ‘혼자 사는 삶’을 내려놓고 ‘영적 동반자’로 새로 태어난 신랑 신부의 새출발을 진정 축하해주고 싶지 아니한가?

공 경 호 오산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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