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자유의 표상, 그리스인 조르바

우리는 매일 정해진 틀 속에서 하루를 보낸다. 순간순간 일탈을 꿈꾸지만 이루어질 수 없는 동경이다. 가끔 용기를 내 일상에서 탈출을 시도하지만 세상과 연결되어 있는 끈 안에서 몸부림정도 수준이고 세상에서 영원히 이탈될까봐 얼른 제자리로 복귀하는 것이 전부다.

자유는 인간의 본능이다. 원초적 본능에 대한 억압 때문일까? 세계 명저 중 우리나라 지식인들이 가장 좋아한다는 고전이 바로 ‘그리스인 조르바다’. 김정운 교수는 이 책을 읽고 자유에 대해 한껏 고무된 나머지 잘 나가던 교수직을 내려놓고 야인이 되었다. 이미 고인이 된 조르바의 아우라는 시대와 국경을 넘어서 지금 이곳에서도 여전히 뜨겁게 빛난다.

작가 니코스 카잔차키스는 그의 인생에 영향을 준 인물로 그리스 민족시인 호메로스와 철학자 앙리 베르그송, 니체 그리고 조르바를 꼽았다. 세 사람은 책에서 만났고 유일하게 조르바만 생전에 그가 직접 만난 사람이다.

‘그리스인 조르바’는 크레타섬에서 갈탄광사업을 하려던 작가가 조르바를 탄광감독으로 삼고 탄광사업을 정리하기까지 6개월 정도 동거동락하면서 조르바에 대해서 보고 느낀 것을 기록한 자전적 소설이다.

카잔차키스는 첫 눈에 범상치 않은 조르바에게 끌렸고 위대한 인간이라는 것을 간파한다. 조르바는 여러 나라와 도시를 전전하면서 전쟁속에 뛰어들기도 하고 수많은 직업을 거치면서 쌓은 경험을 통해 현실적인 감각과 직관력을 가지고 있다. 복잡하고 난해한 문제를 만나면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고르디아스의 매듭을 자르듯이 단칼에 풀어내는 능력의 소유자다. 그런가하면 위대한 철학자이기도 하다.

“참 신기한 일입니다. 우리가 이 더러운 세상에서 자유를 누리고 싶으면 살인을 저지르고 사기치고 해야 한다는 이야기 아닙니까? 우리 같은 것들에게 벼락을 내리지 않고 자유를 주신 하느님을 이해할 수 없어요.” 세계의 자유를 위한 투쟁을 위해서는 살인이나 나쁜 짓이 용인되는 부조리한 현실에 대해 날카롭게 비판하고 있다. 명분이라는 얄팍한 껍질을 쓰고 ‘왜’, ‘어째서’ 라는 문제제기를 하지 않고 타성에 젖어 사는 현대인들의 정신을 일깨우는 명대사다.

“나는 아무도, 아무것도 믿지 않아요. 오직 조르바만 믿지. 내가 아는 것 중에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게 조르바뿐이기 때문이오. 내가 죽으면 만사가 죽는 거요.” 그는 인간을 경멸하지만 동시에 그들과 함께 살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국경을 넘어 좋은 사람, 나쁜 사람이 있을 뿐이라는 그는 그 단계를 뛰어넘어 모든 인간은 불쌍하다고 생각할 만큼 초월적 경지에 이른다. 그는 녹로 돌리는데 거치적거린다는 이유로 집게손가락을 자를 정도로 자신이 하고 싶은 일에 거침이 없다.

그의 정신과 행동은 언제나 자유를 추구한다.

“처음부터 분명히 말하겠는데, 마음이 내켜야 해요. 나한테 윽박지르면 그때는 끝장이에요. 결국 당신은 내가 인간이라는 걸 인정해야 한다 이겁니다.” “인간이라니, 무슨 뜻이지요?” 라는 작가의 말에 조르바는 “자유라는 거지!”

책상물림인 작가에게 그는 자유에 대해 멋지게 한 수 가르쳐준다. “당신은 자유롭지 않아요. 당신이 묶인 줄을 잘라 버리지 못해요...인간이 이 줄을 자르지 못하면 살맛이 뭐 나겠어요?... 잘라야 인생을 제대로 보게 되는데” 먹거나 사랑하거나 일하는 순간순간에 오직 그 일에만 집중하는 그는 현재를 살아갈 뿐이다.

매순간을 불꽃처럼 살고 자유를 추구하다가 자유를 향해 떠나간 조르바! 작가 카잔차키스가 평생을 추구한 가치철학도 자유다. 카잔차키스는 자신의 묘비명에 이렇게 썼을 정도다.

“나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다. 나는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나는 자유다.”

위대한 인간, 광활한 대륙과도 같은 조르바와 카잔차키스는 평생 염원이었던 자유를 살다가 자유를 향해 그렇게 떠나갔다.

이 책을 읽고 난 후 어떤 깊고 묵직한 울림이 몇 날, 몇 달이 지나도 가시지 않는다. 자유에 대한 염원이 컸기 때문일까? 혹은 조르바와 카잔차키스의 정신에서 인간의 본질과 원형을 발견했기 때문일까? 분명한 것은 매뉴얼대로 기계적으로 살아온 일상을 조금 더 자유롭고 창의적인 시선으로 해석하고 바라볼 여유가 생겼다는 것이다.

이 국 진 의정부문화원 이사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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