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은 한순간에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한 사람 두 사람의 발걸음이 모이고 더해지면서 다져지고 넓어져서 생기게 된 것이다. 길이 있는 곳에 마을이 형성되고, 길이 만나는 곳에 시장이 탄생하며, 길옆으로 행인들이 쉬어가는 주막이 생겨나기도 한다. 이렇듯 길 위에 인간의 삶과 문화가 쌓이고, 그 위에서 소통이 이뤄지게 된다.
그러나 교통수단의 발달로 길의 주체가 사람에서 자동차로 변하면서 길의 의미는 이동을 위한 통로로 한정됐고, 길 위에 흐르던 이야기가 상실됐다. 다행히도 최근 건강한 삶, 느린 삶에 대한 가치가 부각되면서 길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길이 목적지에 닿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자연과 역사, 문화를 이야기하는 소통의 공간으로 기능을 회복하기 시작한 것이다.
길은 여유를 가지고 문화를 향유하며 걷는 사람들에 의해 그 의미가 완성된다. 걷기의 매력은 몸과 마음의 건강뿐 아니라 자아성찰, 자연과의 동화, 문화의 체험, 사람들과의 소통을 가능하게 해 준다는 데 있다.
걷기는 뇌의 자율신경 기능을 원활하게 해 각종 질병의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는 스트레스 감소에 도움이 된다. 경쟁에서 벗어나 잃었던 ‘나’를 재발견하고 새로운 삶의 희망을 느낄 수 있는 자아성찰의 기회를 제공하기도 한다. 걷기는 자연과의 소통의 시간을 제공한다. 바람소리와 들꽃의 향기, 자연경관의 아름다움을 몸으로 느끼고 즐길 수 있는 매력이 존재한다.
또한 낯선 문화와의 조우를 통해 다른 문화를 이해하게도 해주고, 각각 다른 삶을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과 소통할 수 있는 기회가 되기도 한다. 같은 듯 다른, 길가의 풍경이 만들어내는 낯설음은 고즈넉한 돌담과 앞마당의 장독대를 통해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면면을 떠오르게 하고, 짧은 눈인사까지 하게 되면 그 낯설음은 정겨움으로 바뀐다.
세계 도보여행객들에게 꿈의 코스로 알려진 산티아고 순례길, 이 길의 가장 큰 비밀은 그 길을 걷는 사람들이라고 한다. 아플 때 약을 나눠주고, 목마를 때 물을 건네고, 배고플 때 밥을 해주는, 마치 자원봉사 협회에서 나온 듯 세상에서 가장 따뜻한 나눔이 순례자에서 순례자로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 길을 모티브로 한 제주 올레길에도 방향을 알려주는 리본을 달고 쓰레기를 주우면서 올레코스를 가꾸어가고 있는 자원봉사자들의 활동이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그러나 길이 만들어지고 걷는 사람이 늘어나면서 나눔과 봉사와 같은 긍정적인 측면만 있는 것은 아니다. 쓰레기가 버려지거나 자연과 농작물이 훼손되고, 여행객과 주민들이 사이에 마찰이 생기기도 한다. 길이 갖고 있는 소통의 의미를 살리기 위해서는 길을 걷는 여행객들의 주의와 주민들의 이해가 함께해야 한다. 자연환경을 가꾸고 풍광을 지켜온 주민들의 노고에 감사한 마음으로 오며가며 만나는 주민들에게 정다운 미소, 눈인사로 고마움을 표현하자. 그리고 주민들은 농촌을 찾아오는 여행객들을 반갑게 맞이하고 또 방문할 수 있게 열린 마음으로 대해보자.
최근 농촌진흥청에서는 농촌의 아름다운 풍경과 따스한 인심을 느끼며 걸을 수 있는 마을길 30곳을 소개하고, 이 길을 농촌주민들이 어떻게 가꾸고 운영해 나갈지 다룬 책을 발간한 바 있다.
길따라 꽃들이 피고 새싹이 돋는 이 봄에 아름다운 풍경과 따스한 인심을 느낄 수 있는 농촌 마을길을 걸으며 소통의 의미를 새겨보았으면 한다.
안 옥 선 농촌진흥청 농촌환경자원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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