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남양유업 팀장과 아버지 같은 대리점 점주간의 대화록이 세간에 알려지며 국민이 공분하고 있다. 국회에서는 가칭 남양유업 방지법 제정이 활발히 논의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인천에서 40대 배상면주가 점주가 남양유업과 거의 흡사한 강압적 푸쉬(밀어내기)에 빚만 진 채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그는 유서에 “남양유업은 빙산의 일각이었다. 살아남기 위해 많은 행사를 했지만, 남는 건 여전히 밀어내기”라고 적었다.
어디 이뿐이겠는가?
남양유업 사건이 터지면서 유사사례를 찾아 본 결과, 경기도내에서도 대형 유통센터가 밀어내기 횡포를 부리다 적발된 사례도 발견됐고 건설현장 관계들은 아예 말문을 막을 정도로 공공연한 실태이라고 입을 모았다. 횡포를 넘어서 그야말로 甲의 質이 우리 사회에 만연하고 있는 것이다.
이에 그동안 숨죽이고 있던 乙이 반격을 가하고 있다. 국민들의 공분을 등에 업고 말이다. 중소 유통업체들의 남양유업 제품 판매거부 운동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국회와 정부에서는 법을 만들고 손톱 밑 가시를 뽑겠다며 뒤늦은 호들갑으로 가세하고 있다.
이런 甲乙관계는 인간사에 ‘계약’이라는 약속이 생길 때부터 탄생하지 않았나 싶다. 계약은 ‘복수 이상의 당사자가 의사표시의 합의를 이룸으로써 이루어지는 법률행위’를 의미하며, 계약에서의 의사표시 합의는 각자의 당사자가 서로 대등하다는 것으로 내포하고 있다.
그런데 여기에 甲乙이 등장하면 이 계약의 의미가 사뭇 달라진다. 甲乙은 계약서를 작성하는 과정에서 계약 당사자들의 명칭이 반복되는 것을 편의상 피하기위해 쓰여진 것이지만 언제부터인가 甲은 강자이자 대기업, 乙은 약자이자 중소기업으로 변질돼 인식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희한한 것은 甲乙이란 의미에도 이런 차별은 전혀 없다는 것이다.
甲乙의 어원을 찾아 보면 甲乙은 60갑자(甲子)에서 발견할 수 있다. 60갑자는 천간(天干) 10개와 지지(地支) 12개의 조합으로 구성된 것으로 천간은 하늘의 시간적ㆍ계절적 기운 흐름을 ‘갑을병정무기경신임계(甲乙丙丁戊己庚辛壬癸)’로, 지지는 땅의 기운 흐름을 ‘자축인묘진사오미신유술해(子丑寅卯辰巳午未申酉戌亥)’라는 문자로 각각 표시한 것이다.
이 10천간이나 12지지는 대자연의 기운 흐름을 순서대로 나타내고 있을 뿐 우열이나 서열, 강자나 약자의 개념은 전혀 포함하고 있지 않다.
결국 甲乙관계는 하늘의 진리도, 땅의 섭리도 아닌 사람의 욕심이 만들어 낸 추악한 산물에 불과한 것이다.
혹자는 말한다. 이번에 남양유업 사태로 불거진 甲乙관계가 두 당사자간만의 행태이겠나고. 丙丁으로 내려가면 더욱 심하다고. 현장에서 만나는 丙丁의 당사자들은 맞는 말이라고 입을 모은다. 그들은 아예 乙은 그나마 낫다고 乙을 부러워 하기까지 한다. 丙丁은 아예 남는것도 없다고 하소연한다.
乙丙丁이 甲으로 부터의 수모를 받으면서도 할 수밖에 없는 것은 이 관계 속에 생계가 달려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런 乙丙丁의 아픔과 고뇌를 아는 지 이번 사태에 대한 국민적 공분은 이명박 정부시절 촛불시위와 버금갈 정도로 강하다. 이는 바로 이번에 반드시 악습을 끊어내고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 내야 한다는 간절한 염원의 발로일 것이다. 서로를 존중하고 상생하는 갑을문화가 형성돼야 한다는 것이다.
필자도 이 글을 쓰면서 혹시라도 언론에 몸담았다는 명분을 내세워 甲乙관계에서 甲質을 하지나 않았는지 되짚어 본다.
정일형 사회부 부국장
로그인 후 이용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