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변화하는 모성신화

지난 5월은 가정의 달로 유독 행사가 많았다. 어린이 날, 어버이 날, 스승의 날, 이 많은 행사의 끝에 하필 필자의 생일까지.

해마다 어린이 날엔 두 아이들을, 어버이 날엔 양가 부모님을, 스승의 날엔 두 아이들 담임선생님을 챙기고 각종 어린이날 행사에 쫓아다니고 나면 경제적, 정신적, 육체적 피로감으로 녹초가 된다. 그러고 나면 일 년 중 유일하게 주인공이 되어 대접을 받을 수 있는 필자의 생일날엔 가족들이 만들어주는 이벤트조차 즐길 마음의 여유가 없다.

설문조사에 의하면 유부녀, 유부남, 독신녀, 독신남 중에서 유부녀의 행복지수가 가장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유부녀로서 해야 할 의무감과 책임감, 그리고 구속감이 다른 포지션보다 더 크기 때문일 것이라고 분석된다. 필자 역시 가족이나 주변사람을 챙기는 일부터 주부로서 할 일을 완수하는 것이 마음 편하고 직무 수행을 했다는 안도감은 들지만 행복한 기분은 들지 않았다.

엄마로 살아간다는 것은 끝없는 자기 희생을 전제로 언제든 가족을 위해 전방위로 뛰는 플레이어가 되어야 하며 상황에 따라 멀티형 해결사 노릇을 해야 한다는 의미다.

강준만 교수는 저서 ‘어머니 수난사’에서 ‘국가가 가정을 지키지 못해 각개약진의 가족주의와 계층 상승 및 체제 존속의 수단으로 가족을 위해 투사로 살아야만 해왔던 어머니들의 역사’에 대해 밀도있게 해부하고 비판했다. ‘입시전쟁, 부동산 열풍, 정략적 결혼풍속, 엄친아 현상 등이 투사로 살아야만 했던 어머니의 손끝에서 탄생되었고 그 결과 가족 구성원 그 누구도 행복하지 않으며 희생자’이며 이제는 달라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20세기 여성들의 대부분은 강 교수가 언급했듯 자식의 출세와 가족의 번영을 위해 가정에서 투사로 살아왔다면 21세기 여성들은 가정과 직장을 완벽하게 꾸려나가야 하는, 즉 주부역할에 커리어우먼이라는 역할까지 감당해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

직장과 육아와 가정을 책임지느라 고단한 한 여성이 어느 베스트셀러 스님한테 SNS로 호소했다. “매일 아침 아이들을 놀이방에 데려다주고 회사에 출근해서 늦은 밤에 퇴근하면 아이한테 미안하고 할 일은 많고 힘은 들고… 어찌하오리까?”라는 질문에 스님은 “새벽에 일어나서 아이와 매일 한두시간씩 놀아주세요”라고 남성주의적 해결책을 내놓았다. 그러자 많은 젊은 엄마들이 댓글에 “우리가 무쇠냐”, “우리는 쉬지도 말란 말이냐”라며 분노를 폭발했다.

자녀를 위해 희생만 했던 예전의 어머니와는 달리 자신의 존재감과 행복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젊은 엄마들의 인식 변화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희생과 헌신과 완벽한 모성’을 강조하는 모성신화에서 ‘엄마가 행복해야 아이도 행복하다’는 엄마로 변화하고 있는 것이다.

아이와 엄마 모두가 행복하려면 엄마들 각자의 철학과 소신이 필요하다. 개인적 차원을 넘어 사회적으로 육아에 대한 인식변화와 국가가 육아를 함께 책임지는 부분이 제도적으로 필요하다.

통계적으로 지금과 같은 저출산으로는 대한민국 존속이 위험하다고 하니 거시적으로 보면 행복한 엄마 만들기 프로젝트에 동참하는 것이 우리의 후손을 위하는 길이 될 것이다.

 

이국진 칼럼니스트 의정부 문화원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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