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민간외교의 꽃

성남문화원은 최근 중국 심양시에서 2006년부터 연례적으로 추진 해온 문화행사를 여덟 번째 개최하였다. 심양시 지역의 조선족 및 한족, 소수민족 학생 500여 명을 대상으로 우리 고장 인물인 둔촌 이집 선생의 고매한 인품을 기리는 ‘둔촌 백일장’을 개최하여 우수한 학생에게 장학금을 수여해 왔다.

또한, 2009년부터는 ‘한중 문학인 만남과 시낭송회’를 개최하기 시작하여 올해 다섯 번째 행사를 통해 현지 동포 문인들과 학생들로부터 뜨거운 갈채를 받았다.

특히, 이번에는 성남문화원의 제11회 학술토론회를 중국에서 개최하여 한중 문화교류의 발자취를 회고하고, 그 의미를 평가하는 자리도 갖게 되었다. 이는 성남문화원이 추진해온 한중 문화교류의 영역을 넓히고, 오래전부터 긴밀하게 진행해 온 문학교류에 대한 회고와 앞으로의 한중 문화교류의 발전 방안에 대해 깊은 이야기를 나누는 자리가 되었다.

성남문화원이 중국 심양시와 문화교류를 하게 된 배경은, 요녕성의 성도(省都)인 심양시와 성남시가 자매결연을 한 연고가 있기 때문이다. 심양은 병자호란(1636. 12~1637. 1) 당시 청나라의 수도였고, 삼학사(홍익한, 윤집, 오달제)가 순국한 곳이다.

우선 한중 문화교류의 발자취를 더듬어 보면, 한중 수교 이전, 88올림픽 개최 직후, 두 가지 경이로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 하나는 “중국 내 조선족(소수민족) 사회에 한글판 신문과 문학지가 발행되고 있더라.”는 것과, “그리고 또, 그 문학지에 시조문학이 발표되고 있더라.”는 사실이었다.

이 이야기를 듣고 수소문 끝에 1989년 2월, 연길시 문학지 ‘천지’와 장춘시 ‘북두성’의 중국 주소를 통해 그곳 젊은 소설가 김재국과 그의 장인 역사학자 송정환 시인, 그리고 ‘천지’의 총편 리상각 시인의 편지 한 장씩을 받게 되면서 교류가 시작되었다.

그 해 12월에 리상각 시인, 이듬 해 김재국 소설가의 한국 초청이 이루어져 두 사람과 의형제 결의를 하면서 속 깊은 유대를 유지하게 되었다. 그 후, 리상각 시인은 중국 작가협회 연변분회 주석단 회의에서 ‘연변시조시사’단체 조직을 가결하여 3년 후에는 주정부로부터 비준되었다.(1993. 10) 이와 더불어 나는 후원회장이 되어 1993년 12월부터 문학상 시상, 문인 시조집 발간 지원, 작품과 논문발표, 공동시조집 발간, 강연회, 학교순회 백일장, 문학토론회 등의 다양한 사업비를 2002년 8월까지 10년 동안 후원하였다.

 

‘다시 만나도 그리운 사람’ 공동의 10주년 행사비와 출판식 일체를 부담한 이후에 연길시와의 관계는 막을 내리게 되었다. 후원 사업 중, 조선족 문인 최초의 시조 시선집인 ‘하얀 마음, 그 안부를 묻습니다’ 발행은 중국 조선족문단에서나 한국 시조 시단의 영원한 기념비적 시조 시집이라고 생각한다.

연변시조시사와의 인연에 이어 심양시에 거주하는 리창인 시인의 요청으로 심양시와의 교류와 후원을 하게 되었다. 2002년 9월 서탑에서 ‘심양 시조문학회’가 설립되어 리창인 시인이 초대 회장으로, 내가 후원회장으로 추대되었다. 곧 이어 심양시와 성남시의 자매결연이 성립되었고, 제자 손성종 회장과 김정진 사무국장이 솔선수범해 모든 일의 기초를 준비해 주면서, 성남문화원장 직분을 최대한 보탠 결과, 문학행사를 연례행사로 정착시켜 오늘에 이르게 된 것이다.

아내 신정길과 함께 심양시를 여러 차례 방문하여 자매도시 문화교류의 목적과 방침을 세우고, 둔촌백일장과 학술토론회, 문인작품 시낭송회 개최를 합의하기까지 준비를 철두철미하게 하였다. 여기에는 심양시 교육국 관계자 및 주선양대한민국총영사관, 한국국제학교, 심양한인회 등 여러 단체 임원들의 지원과 협조가 있었다. 성남문화원의 문화교류 사업이 민간외교의 한 축을 담당하고, 우리 시와 한국의 위상을 높이는 데 작은 디딤돌이 되기를 바란다.

한춘섭 시조시인ㆍ성남문화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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