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여름은 특히 무더위가 일찍 찾아온데다 수 개의 원자력 발전소가 가동을 멈추면서 사상 최악의 전력 대란을 예고하고 있다. 2년 전 ‘블랙아웃(대 정전)’을 경험했기에 국민불안은 가중되고 있다. 그런데도 절전 외에는 대안이 없어 보이니 답답할 따름이다. 정부가 내놓은 여름철 전력 수급대책이란 것도 대기업 공장의 전기 사용을 규제하는 절전에 초점이 맞춰졌다.
최대 소비전력이 5천㎾ 이상인 2천836개 업체가 대상이다. 8월 5일부터 30일까지 4주간 피크타임(오전 10~11시, 오후 2~5시 등) 때 전기 사용을 3~15% 절감해야 한다. 5천㎾ 미만 전기를 쓰는 업체에는 수요가 몰릴 때 전기를 쓰면 비(非)피크타임 때의 최저 요금보다 무려 3배의 요금을 내는 선택형 피크요금제를 적용한다. 이러니 원전 3기가 가동 중단하게 된 부실 관리의 책임을 기업에 떠넘긴다는 산업계 비판이 나올만하다.
금융기관, 대형상점, 공공기관 등에는 냉방온도를 제한했다. 실내 온도를 26~28도로 유지해야 하고 문을 열고 장사하면 최대 300만원의 과태료를 내야 한다. 이렇다 보니 백화점 피서도 옛말이 됐다. 창문이 없으니 시간이 갈수록 온도는 올라간다. 조명을 끈데다 냉방도 줄이면서 의류 매장은 비상이 걸렸다. 가만히 있어도 땀이 흘러 손님들이 옷 입어보기를 꺼리니 매출이 발생할 리 없다.
시중은행 관계자들의 고민도 깊어지고 있다. 공과금을 내러 온 고객들이 덥다고 불만을 터뜨려도 실내 온도를 맞춰야 하니 난감하기만 하다. 상인들은 장사가 안 된다고 난리다. 가뜩이나 손님이 없는데 냉방기마저 맘대로 틀지 못해 후텁지근하니 누가 물건을 사러 오겠느냐고 볼멘소리다. 차라리 벌금을 내겠다며 문을 연 채 냉방기를 가동하는 가게도 있다.
공무원들의 여름나기는 더 눈물겹다. 직업 특성상 시민에 모범을 보여야 해 지난 겨울에도 혹독한 추위에 시달렸는데 올여름 작년보다 15% 이상을 더 절전해야 한단다. 사실 공공부문은 이미 절전을 할 만큼하고 있어 추가 절전이 불가능하다. 연초 전기요금마저 올라 낮에는 아예 전등을 끄고 일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내몰렸다.
건물 벽 전체가 유리인 이른바 ‘통유리 청사’에서 일하는 공무원들은 고통스럽기까지 하다. 전면 유리는 보기에는 좋지만 열 투과가 잘돼 실내온도를 올리는 주범이 된다. 화려한 유리벽에 초호화청사라는 손가락질을 받은 성남시청사 공무원들이 그렇고, 용인시청 공무원들도 유리 창문 대부분을 커튼으로 가리고, 썬팅까지 새로 입혔지만 큰 도움이 안 된다고 하소연한다.
컴퓨터에서 뿜어져 나오는 열기 탓에 흐르는 땀이 서류를 적실 정도라니 일이 즐거울 리 없다. 당연히 몸은 처지고 불쾌지수는 높아지니 민원인을 대하는 데 친절이란 게 우러나올 수 없다. 행정 서비스 질이 나빠지면 피해는 또 국민이 본다.
정부는 쥐어짜기식 규제를 지양하고 효율적인 절전을 유도해야 한다. 무엇보다 매년 되풀이되는 전력난을 해결할 수 있는 근본적인 전력수급 대책이 필요하다. 그래야, 국민이 언제 터질지 모르는 블랙아웃공포에서 벗어날 수 있다. 덕분에 사용하지 않는 전자기기의 플러그를 뽑아놓는 습관이 생겼다는 위안만으로는 올여름 더워도 너무 덥다.
박정임 경제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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