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소년병 이야기

예나 지금이나 열 다섯 살은 어른 대우를 받기보다 교육과 보호의 대상인 미성년이다.

그러나 1950년 한국전쟁 당시 열 다섯 살 소년은 ‘어른’이었을 뿐 아니라 죽어서도 대한민국을 지킨 어엿한 ‘호국영령’이었다.

한국전쟁 당시 정식으로 군번을 부여받은 소년병은 총 2만9천603명이고 평균 나이는 열다섯살이라고 전해진다. 이들 소년병은 목숨을 걸고 대한민국을 지키다 2천573명이 전사하였고 여학생도 467명이나 되었다고 한다. 소년병의 징집은 당시 전세의 악화로 인해 학교배속장교의 권유, 학교의 소집, 자원입대, 가두징병모집 등 정상적 절차보다는 임시방편적인 수단에 의해 이루어 졌다.

그러나 이렇게 당당히 군번을 부여받고 전쟁에 참전해 전사한 소년병들 가운데 국립현충원 등 공식 현충시설에서 영원한 안식을 찾은 이는 단 한 명도 없다. 이 외로운 호국영령들의 넋을 기리고 위로하는 것은 매년 6월 열리는 위령제뿐이다.

그간 우리 정부는 소년병의 실체를 인정하지 않다가 작년에야 비로소 전사(戰史)에 이를 기록하고 전쟁 유공자로 인정했다. 하지만 여전히 법적인 근거가 부족해 보상이나 현충 사업은 요원하다고 한다. 위령비 하나 없이, 살아서도 죽어서도 소외당한 군인들이 바로 소년병들인 것이다.

세월이 흘러도 반드시 조국을 위해 헌신한 이들을 기리고, 한 구당 수만 달러가 들어가도 반드시 유해를 찾아내고 유가족에게 합당한 예우를 다하는 미국 등의 다른 나라들에 비하면 참으로 미안하고 죄송스러운 대한민국의 현실이다.

문제는 어린 나이에도 조국을 지키고 민주주의를 수호하기 위해 참전한 소년병들의 숭고한 뜻이 무색하게도 지금의 대한민국 청소년들은 전쟁이 마치 남의 나라일인 것처럼 착각하고 있다는 점이다. 얼마 전 언론에서 실시한 청소년 역사인식 조사결과를 보면 고교생 응답자의 69%가 6ㆍ25를 북침이라고 응답했고, 이번만이 아니라 매년 여론조사에서 6ㆍ25가 남침인지 북침인지 잘 모르겠다는 학생들이 많다는 결과는 이젠 놀랄 일도 아니다.

자신이 살고 있는 대한민국이 어떻게 세워졌고 어떻게 지켜졌는지에 대해 무지를 넘어 통탄할 지경에까지 이른 것이다.

한 나라의 역사에는 선조들의 혼과 얼이 담겨있다.

역사를 모른다는 것은 선조들의 혼과 얼을 망각했다는 뜻이고, 혼과 얼이 없는 민족은 쇠퇴와 패망의 길로 간다는 것은 인류 오천년 역사가 증명하는 주지의 사실이다.

자라나는 세대의 70%가 선조들의 희생과 뜻을 잊고, 역사를 망각하고, 과거에 대한 명확한 직시 없이 개개인의 돈과 행복만 찾는 대한민국이라면 열 다섯 살, 친구들과 함께 뛰놀아야 될 교정에서 군사훈련을 받고, 사람을 사랑하는 법보다 사람을 죽이는 법을 어쩔 수 없이 먼저 배워야했던 1950년의 열 다섯 살 호국영령들에게 너무나 미안한 일이 아닐까.

세계지도를 펼쳐 놓고 살펴보면, 소년병이 많은 나라는 모두 해묵은 분쟁지역이다. 달리 말하면 소년병은 갈등과 분쟁의 역사에서만 존재하는 슬픈 명사(名辭)다. 이 슬픈 이름들이 역사에 다시는 나타나지 않게 하는 길은, 63년 전 펜 대신 총을 들고 전장으로 향했던 이름 모를 소년병들의 뜻을 기리고 그 분들을 영원히 기억하는데서 시작돼야 한다.

정전 60주년을 맞는 올해에는 소년병을 기리는 제대로 된 추념비를 세우고, 6ㆍ25가 북침이라는 열다섯살 학생들과 함께, 1950년의 열다섯살들의 이야기와 2013년의 열다섯살들의 이야기를 함께 나눌 수 있었으면 한다.

김찬영 경기도지사 청년특별보좌관

© 경기일보(www.kyeonggi.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댓글 댓글 운영규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