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가 국가기록원에 있어야 할 2007년 10월 노무현-김정일 회담 대화록을 누가 폐기했는지 여부를 놓고 다투고 있다는 소식이 장맛비처럼 계속되고 있다. 차후 대처방안을 보면 새누리당은 검찰수사를 통해 사초(史草)의 삭제 책임을 민주당에 물으려하고 있고, 민주당은 회담 전후의 회의록을 열람해 노 전 대통령이 ‘NLL 포기’를 의도하지 않았다는 점을 부각시키려고 하고 있다.
여야의 대화록 공방을 승패가 있는 게임으로 본다면, 민주당이 이길 가능성은 거의 없다. 왜냐하면, 국정원에서 공개한 회의록 전체를 읽어 보면, 노무현 전 대통령이 김정일의 ‘NLL 포기 요구’를 받아들였다고 보는 것이 유일한 독해(讀解)이고, 회담 전후의 발언이 회담의 결과를 바꿀 수는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민주당은 NLL 논쟁에서 근본적으로 빠져 나올 수 있는 큰 결단을 출구전략으로 모색해야 할 때가 됐다.
노무현-김정일 회담 대화록 논쟁에 밀렸지만, 훨씬 중요한 빅게임이 목하(目下) 한반도에서 진행되고 있다. 바로 개성공단 재개를 놓고 벌어지고 있는 남북회담이 그것이다. 7월 22일 개성에서 열린 5차 실무회담에서도 ‘재발방지를 위한 제도적 보장 방안’을 놓고 남북은 합의를 이루지 못하고, 25일에 다시 6차 회담을 열기로 했다.
한국 정부의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에 대한 열의와 김정은 정권의 국제적 고립 및 경제난을 고려할 때, 개성공단을 재개한다는 데에는 남북 간에 이견이 없다. 그렇다면 합의를 하지 못한 근본적 이유는 무엇일까?
몇몇 북한전문가들은 ‘중앙특구개발지도총국 부총국장’이라는 실무직에 불과한 북한의 박철수 수석대표가 감당할 수 있는 내용이 아니라는 점을 지적하면서, 실무자 회담에서는 공단재개에 관련된 사항에 합의하고, 재발방지 논의는 최소한 차관급 회담에서 다루어져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이런 판단은 오산이다. 왜냐하면 수령주의 북한에서 개성공단의 중단 여부를 결정할 수 있는 사람은 바로 최고존엄 수령이기 때문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22일 청와대 수석비서관 회의에서 “이번 실무회담은 개성공단 정상화에 역점을 두고 있지만 새로운 남북 관계 정립을 위한 원칙과 틀을 짜는 중요한 기초가 된다는 점에 유의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내용적으로 이번 개성공단 실무회담은 사실상 남북 최고위 당국자 회담이나 다름없게 됐다. 그렇다면 이 게임은 누가 이길까? 북한의 최고존엄이 빨리 출구전략을 짜는 것이 그나마 이 게임을 외견상 윈-윈으로 만들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홍성기 아주대 기초교육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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