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열면서] 복(伏) 중에 가을을 생각하며…

어느덧 초복도 중복도 지났다. 이제 입추도 지나고 나면 완연히 계절의 변화를 실감하겠다. 그런데 달력을 보니 말복이 수상하다.

초복은 하지가 지나고 세 번째 맞는 경일(庚日)에 오는 것이라 지난 13일이었고, 중복은 그 다음의 경일이라 지난 23일에 지났으니 말복은 8월2일에 맞이하는 것인데 그날 말복이 아니란다. 가만 달력을 살피니 가을로 들어선다는 입추가 8월 하고도 7일이다. 말복은 입추를 지난 첫 번째 오는 경일(庚日)이니 다음달 12일이다.

어이쿠! 삼복(三伏)의 더위를 이겨내기 힘들다해 ‘삼복 기간에는 입술에 묻은 밥알도 무겁다’ 했는데 예년과 달리 삼복의 기간이 열흘이나 더 긴 셈이다. ‘삼복’ 복은 복(福)이 아니다. 제 주인 앞에서 벌렁 드러누워 있는 개처럼 낮게 엎드리라는 의미의 복(伏)이다. 오죽 무덥고 무기력하기에 입술에 묻은 밥알도 무겁게 느꼈겠는가?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기간에 경일(庚日)을 복날로 삼은 까닭은 천간(天干) 중 경(庚)이 오행(五行)으로 금(金)의 성질을 갖고 있어 계절로 가을을 상징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러니 삼복이 모두 경일로 정해진 것은 가을을 고대하며 더위를 이겨보라는 속뜻이 담긴 것이었다.

더위를 이기기 위한 방편인 복달임으로 갖가지 보양식을 먹지만 오늘날에도 특히나 보신탕을 제일로 치고 있다. 200년 전 조선 후기의 문인인 유만공(柳晩恭)은 복날의 풍경을 “집집마다 죄 없는, 뛰는 개만 삶아 먹는다.”했다. 조상들께서는 왜 개를 복달임의 음식으로 택한 것일까? 여기에도 오행의 원리가 작동하였다. 개는 금(金:쇠)을 상징하기 때문이다.

‘한국세시풍속사전’에 소개된 홍석모의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에도 “개를 삶아 파를 넣고 푹 끊인 것이 개장(狗醬)이다. 닭이나 죽순을 넣으면 더욱 좋다. 또 개장국에 고춧가루를 타고 밥을 말아먹으면서 땀을 흘리면 기가 허한 것을 보강할 수 있다.

생각건대 ‘사기(史記)’ 진덕공 2년(기원전 676)에 비로소 삼복 제사를 지냈는데, 성안 대문에서 개를 잡아 해충의 피해를 막은 것으로 보아 개를 잡는 것이 복날의 옛 행사요, 지금 풍속에도 개장이 삼복 중의 가장 좋은 음식이 된 것이다.”라고 했다.

그렇다 하여 복날의 음식이 개장국과 삼계탕만은 아니었다. 궁중에서는 고위관리들에게 쇠고기와 얼음을 하사하였다는 기록도 있다. 또한 계곡을 찾아 수박과 참외 등 시절과일을 먹으며 물놀이를 하는 것으로 더위를 피하고 지친 심신에 활기를 되찾고자 하기도 했다.

그런데 삼복의 더위가 벼를 자라게 한다. 초복에는 한 살, 중복에는 두 살, 말복에는 세 살이 된다. 돌을 맞은 아이에게 돌상을 차려 무탈하게 잘 자라주기를 기원하였듯 벼도 한 살이 되면 떡과 음식을 장만하여 제사를 지낸다. 이를 복제(伏祭)라 했다.

전하는 속담 가운데 ‘삼복에 비가 오면 보은 처자 울겠다.’는 말이 있다. 대추의 명산지인 보은 지방에서 대추 수확으로 혼수를 마련한 데서 나온 말이라고 한다. 그런데 벼농사에서 삼복에 내리는 비는 복(福)비였다. 대개가 복날에 비가 오면 풍년이 든다고 믿었다.

이열치열(以熱治熱)요 이냉치냉(以冷治冷)이다. 무더운 가운데 곡식이 자라나고 따가운 볕으로 알곡이 익어간다. 냉혹한 추위에 병충이 사라진다. 이와 같다. 장마가 닥치고 무더위가 기승을 부려야 여름이다.

덥다고만 할 일이 아니다. 유만공의 추석(秋夕)이란 시에 ‘무가무멸사가배(無加無滅似嘉俳)’란 글귀가 있다. 풍성한 들녘을 보며 ‘더도 덜도 말고 한가위 같기만 해라’ 이렇게 넉넉한 가을을 기다린다.

 

김용국 (사)동아시아전통문화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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