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소가 알고 있는 것과는 달리 나치의 수권법은 ‘아무도 모르게’ 통과된 것이 아니다. 히틀러는 이 법을 통과시키기 위해 의회의 의사진행규칙을 바꿨다. 수권법이 통과하려면 의원의 2/3가 참석하고 재석의원의 2/3가 찬성해야 하지만, 수권법을 반대하던 당시 사회민주당과 공산당 의원들이 참석하지 않으면 통과가 불가능했다.
나치는 이 규정을 우회하기 위해 ‘양해를 구하지 않고 참석하지 않은 의원은 참석한 것으로 간주한다’는 조항을 집어넣었다. 또 이 개정안을 통과시키기 위하여 돌격대(SA)들로 하여금 의사당을 포위하게 만들었다. 결국 게슈타포가 구금하고 있던 좌파의원들을 모두 재석의원으로 간주하는 사기를 통해 수권법은 통과됐다. 히틀러의 수권법은 국가기관간의 권한의 이동을 금지하는 3권 분립에 정면으로 위배되는 것으로써 바이마르 헌법을 완전히 무력화했다. 그 결과는 대재앙이었다.
자신의 발언이 전 세계적으로 파문을 일으키자 아소는 발언의 진의가 곡해됐다고 주장했다. 아마도 아소는 평화헌법 9조를 우회하는 법령을 통해 일본이 사실상 군대를 보유하고 전쟁을 할 수 있는 방법을 추구했을 것이다. 그러나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는 헌법을 우회하겠다는 발상 자체가 독재로의 문을 여는 것이다.
일본 우파가 과거 군국주의의 만행을 전혀 반성하지 않은 배경에는 패망 이전의 군국주의 일본 지배층과 이후의 지배층이 단절되지 않았다는 사실이 있다. 일본은 자유민주주의 국가의 외투를 입었지만 일본의 혼네(본심)에는 전범 쇼군들을 섬기는 군국주의 정신이 온전히 남아 있다고 봐야 한다.
한국은 일본의 급격한 우경화에 대처해야 한다. 그러나 일본정치에 직접 영향을 주기는 어렵다. 중요한 점은 가능한 빨리 한반도를 자유민주주의 국가로 통일하는 것이다. 그래야만 우리 주위를 둘러싸고 있는 열강에 휘둘리지 않을 수 있다.
홍성기 아주대 기초교육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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