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춘향전 漢詩가 우리에게 던지는 의미

사회 각계각층 지도층인사의 비리로 헤드라인 뉴스를 장식할 때마다 필자는 춘향전에 나오는 한시 한 구절을 음미할 때가 있다. 많은 분이 알고 계시는 유명한 한시라서 굳이 해석할 필요는 없겠지만 재음미하는 의미에서 인용하자면 다음과 같다.

金樽美酒 千人血(금준미주 천인혈) /玉盤佳肴 萬姓膏(옥반가효 만성고) /燭淚落時 民淚落(촉루락시 민루락) /歌聲高處 怨聲高(가성고처 원성고)//금 술통의 좋은 술은 천 사람이 흘린 피요, 옥쟁반의 좋은 안주는 만백성의 기름이라. 촛불 눈물 떨어질 때 백성 눈물 떨어지고, 노랫소리 높은 곳에 원망 소리 드높구나.

이몽룡이 암행어사가 되어 춘향의 어머니 월매에게는 거지로 변장해 인사하고, 변사또의 생일잔치에 걸인과객으로 참석해 음식을 얻어먹으면서 ‘膏(기름 고)’자와 ‘高(높을 고)’자의 운으로 한시를 써서 사또와 관리들을 부들부들 떨게 하고 암행어사 출두하는 그 유명한 장면에 등장하는 한시이다.

도처에 노래방도 많고 놀이 문화가 정착된 요즈음 공무원의 음주 가무를 바로 국민의 고혈이라고 보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을 것이다. 다만, 춘향전은 백성의 끼니 해결을 위해 몸소 실천하는 목민관의 마음가짐을 역설하고 있다.

지도층의 솔선수범이 그리운 사회

혹자는 춘향전의 이 대목을 두고 전시행정이라고 깎아내리겠지만 필자는 솔선수범과 전시행정은 다른 개념으로 이해해야 함을 이야기하고 싶다. 설령 그것이 보여주기 위한 쇼라 하더라도 솔선수범하는 정치인이 그리운 이유다.

공과가 뚜렷했던 대통령 중 한 분이었던 박정희 전 대통령의 모내기 장면이 그리운 이유이기도 하다. 지난 수십 년간 역대 대통령들이 국정운영으로 바빠서 이런 모습을 볼 수 없었던 것인지도 모르겠지만, 대통령이 모내기에 참여한다는 것은 직접 농정을 살피겠다는 강력한 정책의지를 보여준 것이고 이보다 더 효과적인 메시지 전달은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노블레스 오블리주가 요구되는 지도층인사 일부가 병역기피, 탈세, 부동산투기, 위장전입 등을 서슴지 않고, 국기게양이나 쓰레기 분리수거 등 사소한 것조차 지키지 못한다는 이야기를 접할 때마다 춘향전의 장면처럼 암행어사 출두야 하고 외치고 싶기도 하다. 국기게양이나 쓰레기 분리수거처럼 사소한 일에도 정성을 다하지 못하는 마음가짐을 가진 자는 국민을 섬길 자격이 없다.

비정규직이 보편적 추세가 되어버린 경제상황으로 인해 불투명한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사회 전반에 깔리면서 안전 불감증, 안보 불감증, 도덕 불감증과 같은 3대 불감증이 우리 사회에 만연하게 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가난은 나라님도 구제하지 못한다고 했고 국내경제가 국제사회와 연동될 수밖에 없다고 하지만, 비정규직 문제로 국민경제를 불안한 상황으로 내몰지는 말았어야 했다. 이는 지도층이 바르지 못했기에 국민이 신뢰하지 않아 악순환이 반복된 결과다.

국가가 국민을 책임지고 걱정하는 것이 순리인데, 오히려 국민이 국가와 지도층을 걱정하고 있다면 국가운영이 제대로 될 리 만무하다. 정책대결을 통해 민생을 챙기기보다는 지연, 학연, 이념에 따른 갈등으로 선거철만 되면 패를 갈라 싸우면서 국민에게 국가와 지도층을 걱정하도록 하고 있으니 암행어사 출두야 하더라도 할 말이 없다.

보편적 복지에서 맞춤형 복지로

자녀가 잘못되면 늘 노심초사하는 부모의 마음으로 국정에 임하되, 슬기롭게 멀리 보고 계획하는 가족처럼 보살피는 정치를 꿈꿔 본다. 종래 기초노령연금이나 기초생활수급비 같은 ‘생계형 복지’를 중심으로 복지를 추구하는 차원 정도가 아닌, 일자리까지 제공하는 ‘생산형 복지’를 추구하는 사회, 천편일률적인 전시형 복지가 아니라 맞춤형 복지를 추구하는 사회가 된다면 암행어사 출두야 만큼은 면할 수 있지 않을까?

 

장호철 경기도의회 부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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