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시론] 국립농업박물관에 대한 기대

 

경기도 수원시에 국립농어업박물관이 세워진다. 8월12일에 체결한 수원시와 농림축산식품부 양해각서에 따르면 수원시 서둔동의 농촌진흥청 부지에 10만2천여㎡ 규모의 국립농어업박물관이 2018년에 문을 열게 된다. 박물관에는 농어업역사관과 농어업생태관, 세계농어업관, 미래농어업관, 식품·식생활관 등이 함께 들어설 예정이다.

농촌진흥청은 내년 9월 전라북도 전주로 옮겨간다. 수십 년 동안 수원의 상징적 기관의 하나였던 농진청 이전은 수원시민에게는 서운한 일이다. 서울농대가 이미 떠났고, 농촌진흥청마저 떠나면 한때 우리나라 농업의 메카였던 수원 역사의 한 장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가게 된다. 이런 상황에서 국립농어업박물관은 농업수도 수원의 역사를 증언하는 새로운 유산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세계적인 대기업 삼성이 오늘날 수원의 상징 가운데 하나가 되었지만 오랫동안 수원은 한국농업의 중심지였다. 우리나라의 쌀 자급률이 100%를 넘어선 것이 1977년인데, 쌀 자급에 결정적 기여를 한 통일벼가 바로 1971년 수원에서 태어났다. 수원이 농업의 역사·문화적 상징성을 가지고 있다는 염태영 수원시장 주장의 근거가 바로 이것이다.

수원 농업의 역사는 더 거슬러 올라간다. 박물관이 건립될 현 농촌진흥청 부지 인근의 여기산 일대는 초기삼국시대의 벼농사 흔적이 발견된 곳이다. 새로운 나라 건설의 터를 수원으로 정한 조선 정조대왕이 만년둔(萬年屯) 대유둔(大有屯)이라는 국영농장을 시범운영한 곳이기도 하다. 정조대왕이 농업에 힘을 기울인 것은 당시 농업이 경제의 모든 것, 나라의 모든 것이었기 때문이다.

농업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농업용수 확보 노력도 수원 곳곳에 남아있다. 220여 년 전인 1795년에 쌓은 만석거가 바로 만석공원 안에 있는 일왕저수지다. 경기도 기념물 제161호인 만년제(1798년)도 그때 쌓았다. 농촌진흥청이 있고 2012 경기정원문화박람회가 열린 서호도 1799년에 쌓은 축만제(祝萬堤)가 기원이다. 기록을 보면 축만제를 쌓을 때 임금이 개인적으로 쓰던 내탕금을 3만 냥이나 들였다고 한다.

이러다보니 일제도 수원의 농업에 눈길을 돌렸다. 통감부는 1906년에 선진일본농업을 보급한다는 명분을 내세워 87정보의 권업모범장을 수원에 세웠다. 이 권업모범장은 고종 임금의 강력한 요구로 통감부가 조선 조정으로 넘겨줄 수밖에 없었다. 기울어가는 왕조, 무력한 임금이지만 농업을 지키려는 노력만큼은 컸다는 걸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농어업박물관 건립은 서수원권 균형발전을 위한 4대 프로젝트 중 공공기관 부지활용 사업의 하나라는 단순한 의미로만 해석하면 안 된다.

수원시의 위상은 경기도의 수부도시, 최대의 기초자치단체라는 데 머물지 않는다. 나라 안팎으로 수원시의 위상은 높아지고 있다. 세계 지방정부환경협의체인 이클레이(ICLEI, 지속가능성을 추구하는 지방정부)가 서울이 아닌 수원에 한국사무소를 설치했다. 화석연료고갈시대를 대비한 국제행사인 생태교통 행사가 세계에서 처음으로 수원에서 열리고 있다. 지난 5월에 미국 시카고에서 열린 제2회 세계참여예산 국제컨퍼런스에 우리나라에서는 유일하게 수원시가 초청받았다.

이제 국립농어업박물관 건립이 차질 없이 추진돼야 한다. 생명산업으로서의 농업의 중요성을 알리는 교육적 효과는 물론 관광자원 확보 등 수원시와 경기도의 발전에 시너지 효과를 가져올 것을 기대해보자.

 

손혁재 수원시정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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