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명절은 누구에게나 즐거워야 한다

지난 여름나기는 혹독했다. 긴 장마에 이달 초까지 이어진 불볕더위는 건강한 사람까지도 무기력하게 만들었다. 경기침체로 가뜩이나 팍팍해진 살림살이에 살인적인 더위까지 힘을 보탰으니 심신이 편할 리 없다. 김홍성 시인의 시에 ‘흔들지 마세요 너무 흔들어서…멀미하다 가을이 왔습니다’ 라는 구절이 있다. 흔들리게 한 대상은 다르지만, 대한민국의 현재를 사는 사람 대다수는 흔들리며 멀미하다 가을을 맞은 셈이다.

올핸 추석도 이르다. 아침저녁 서늘한 바람이 주는 반가움도 잠시, 코앞에 바짝 다가선 추석이란 놈이 가쁜 숨을 몰아쉬게 한다. 이미 오를 데로 오른 물가에 제수 물가도 들썩이고 있다. 가뜩이나 주머니 사정이 어려운 서민들에게 서둘러 찾아온 명절이 반가울 리 없다.

그래도 어릴 적엔 추석을 앞두고 가슴 설렘이 있었다. 먹을 것이 귀했던 시절이니 부엌에서 새어나오는 음식 냄새 만으로도 배가 불렀다. 오랜만에 만난 친척이 쥐여주는 용돈은 짜릿함이었다. 새 옷, 새 양말에서 풍기는 석유냄새는 여전히 기분 좋은 추억으로 남아 있다.

사실 명절이라고 해서 다 기쁘기만 한 것은 아니다. 음식을 장만해야 하는 주부들에겐 귀찮은 연례행사다. NS 홈쇼핑이 자사 전화상담실과 협력회사의 여성 직원 600명을 대상으로 ‘추석에 가장 부담되는 것’을 물었는데 열명 중 네 명이 ‘음식장만 및 차례상 차리기’ 라고 했다. 나머지는 ‘용돈’, ‘가족 및 친지와의 만남’, ‘시댁방문’ 등 이었다. 구직자들은 온 가족이 모이는 명절 때 친지들이 던지는 한 마디 한 마디가 온통 스트레스다. 고용노동부 취업포털 ‘워크넷’이 20~30대 구직자 3천34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전체 응답자의 열명 중 아홉 명이 ‘명절이 스트레스로 작용한다’고 답했다. 명절에 듣기 싫은 말은 ‘누구는 취직했다더라’, ‘아직도 취직 못 했니?’, ‘그렇게 시간 보내지 말고 아무 일이나 알아봐라’, ‘빨리 취직하고 결혼해야지’ 등 이었다.

벌써부터 ‘명절증후군’을 호소하는 사람들이 있다. ‘명절증후군’은 명절만 되면 심신이 아프고 우울해지는 증상을 말한다. 소화불량, 전신 무력증에 시달리다가 명절이 지난 후에는 두통, 복통을 호소하며 아예 몸살로 누워버리기도 한다. 문제는 이런 증상을 호소하는 이가 단지 며느리들만이 아니라는 거다. 요사이 남편, 부모도 명절증후군을 앓는다고 한다. 명절기간 내내 아내의 눈치를 살펴야 하는 남편, 명절이 끝난 후 자식들을 떠나 보낸 뒤의 허전함을 달래야 하는 부모들에게서도 똑같은 증상이 나타난다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매년 설과 추석 명절 직후 이혼건수가 급증했다. 통계청의 최근 5년간 이혼통계를 보면 설과 추석을 지낸 직후인 2∼3월과 10∼11월의 이혼건수는 바로 직전 달보다 평균 11.5%가량 많았다. 가사일 분담에서 시작된 다툼이 평소 쌓였던 갈등을 폭발시키며 이혼을 선택해서다.

너무나 당연한 얘기지만 명절은 즐거워야 한다. 모처럼 가족이 한자리에 모였는데 누구에게든 스트레스가 돼서는 안 된다. 그러려면 가족 모두 처지를 바꿔 배려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무엇보다 남녀를 막론하고 일을 분담해야 한다. 제사상을 아예 통째로 주문하는 경우가 아니라면 장보기부터 음식 장만하기, 설거지까지 모두 다 참여해 아내의 일손을 줄여줘야 한다.

명절 연휴가 끝난 직후 의류나 명품가방, 액세서리 등 홈쇼핑의 여성 관련 제품 매출이 매우 증가한다고 한다. 주부들이 스트레스 해소용으로 쇼핑을 선호하기 때문이다. 홈쇼핑업계는 올해도 추석 연휴 마지막 날부터 관련 상품을 대거 준비해 방송할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다. 주부들의 마음을 힐링해 줄 화장품·패션·잡화 등이 대상이다. 이런 선물을 받으면 주부들이 행복해 한다고 하니 올 추석 후에는 명절 동안 고생한 부인에게 고마움을 표시하고 경제도 살릴 겸 관련 상품을 구입해 선물해 보자. 뭐니뭐니해도 아내가 행복해야 집안이 화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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