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에서도 힐링 프로그램은 빠지지 않는다. 한 프로그램은 지난 해 대선의 유력주자들을 모두 출연시켜 높은 시청률을 기록했다. 박원순 서울시장의 등장이나 ‘안철수 신드롬’도 기존 정치에 실망한 국민들의 정치적 힐링 욕구가 깔려 있다.
힐링은 치유 또는 치료라는 뜻인데, 우리 사회에서는 몸의 병을 고치는 치료라는 의미보다는 마음의 병을 고치는 치유라는 의미로 많이 쓰인다. 이렇게 보면 힐링 바람은 마음을 심하게 다치거나 억압을 받아 괴로워하는 사람이 많은 사회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문제는 마음의 병은 쉽사리 고쳐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힐링 책을 아무리 열심히 읽고 힐링 방송을 빼놓지 않고 챙겨 봐도 몸과 마음이 쉽게 평온해지지 못한다. 마음을 아프게 만든 잘못된 사회 현실을 그대로 놔두면 아무리 힐링을 많이 해도 효과가 없는 것이다. 힐링 서적을 읽으면 마음의 위안을 받을 수 있지만 책장을 덮고 일어서면 앞에 놓인 고통스런 현실은 그대로이다. 힐링을 요구하는, 그러나 힐링이 되지 않는 우리 사회는 지금 ‘위기시대’ ‘위험시대’이다.
사람들의 마음을 상하게 한 가장 큰 원인은 우울한 현실과 불확실한 미래일 것이다. 일자리, 결혼, 내 집 마련, 출산과 양육, 그리고 자녀교육, 노후에 대한 불안은 사람들을 옥죄고 있다. 나라밖을 둘러봐도 답답한 마음이 풀리지 않기는 마찬가지이다. 가장 큰 문제는 국제경제위기이다. 2008년 미국에서 시작된 금융위기는 2010년 유럽의 재정위기로 확대되었다.
대외의존도가 지나치게 높은 우리 경제에게는 치명타다. 지난해 대선 때 모든 후보들이 입 모아 경제민주화와 복지를 외친 것은 이런 사정 때문이었다.
주변 국가들의 움직임, 특히 동북아의 긴장이 높아지는 것도 매우 우려스럽다. 아베정권은 노골적으로 군국주의화 길을 걷고 있다. 아베의 행로가 평화헌법 포기와 재무장으로 이어진다면 동북아 나아가 아태지역은 혼란의 소용돌이에 휘말릴 것이다. 기대했던 남북관계 개선도 이산가족 상봉 무산 이후 제자리걸음이다. 이렇게 나라안팎이 다 어렵건만 정치는 어느 것 하나에 대해서도 속 시원한 답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도대체 정치란 무엇일까. 정치는 ‘오늘의 문제를 해결하고 내일의 꿈을 주는 것’이다. 사회가 안고 있는 많은 문제들을 가장 높은 수준에서 해결할 수 있는 것이 정치다. 물론 정치가 모든 문제를 한 번에 해결하지는 못한다. 그러나 오늘은 문제를 다 해결하지 못하더라도 내일은 오늘보다 낫고 모레가 내일보다는 나아질 거라는 희망을 주어야 한다.
그러나 우리 정치는 오늘의 문제를 해결하기는커녕 더 많은 문제를 만들어냈고 희망을 주기는커녕 절망에 빠뜨렸다. 19대 총선과 18대 대선으로 새로운 정부가 들어섰지만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다.
원래 정치는 선과 악의 측면을 함께 지니고 있다. 대립과 투쟁도 어찌할 수 없는 속성이다. 다만 대립과 투쟁 속에서도 문제를 해결하고 사람들이 잘 살 수 있도록 만들려는 노력만은 게을리 해서는 안 된다. 폴 케네디(Paul Kennedy)는 앞으로 건전한 경제와 함께 건전한 도덕적 기반을 갖춘 사회가 미래를 주도해 나갈 것이라고 내다보았다. 우리 정치가 전전한 경제, 건전한 도덕적 기반을 갖춘 사회를 만들어 정치적 힐링을 시켜주기를 바라는 건 연목구어(緣木求魚)일까?
손혁재 수원시정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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