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시론] 지진으로 무너진 땅에도 희망의 무지개는 뜬다

인천의 구순구개열 무료수술봉사팀인 스마일 투게더(Smile Together) 프로젝트팀은 인천국제공항공사, 개인후원자들의 도움을 받아 11월2일 필리핀 중남부 비사야제도에 있는 보홀 섬으로 봉사를 떠날 참이었다.

하지만 10월15일 필리핀 보홀에서 강도 7.2의 지진이 발생했다는 소식을 듣고 망연자실할 수밖에 없었다.

현지 주청사 공무원에게 연락을 해보니 “병원이 무너졌을 가능성도 있으니 우선 구호품을 모아서 보내달라”고 요청했다.

주변의 교회와 사랑마을이주민센터 후원자들, 필리핀 출신 이주노동자 14개 공동체의 힘으로 라면, 헌 옷가지, 통조림 음식, 학용품, 세면도구 등 구호품이 속속 쌓였다.

하지만 구순구개열 수술을 받기로 했던 아이들 11명과 가족들이 걱정돼 마음이 불편하기 짝이 없었다.

며칠 밤을 뒤척거리다가 현지에 수술을 진행하자는 의견을 전달하고는 봉사팀의 홍정수(아트라인성형외과) 원장, 간호사 등과 함께 예정했던 2일 구호품을 들고 필리핀으로 향했다.

세부의 막탄 국제공항에서 아침 첫배를 타고 보홀을 향하던 중에도 곳곳에서 지진으로 붕괴된 건물들과 갈라진 도로를 볼 수 있었다.

아침을 먹을 새도 없었다. 수술하기로 했던 병원에서는 도저히 수술이 불가능해 차로 3시간30분 거리에 있는 탈리본으로 이동했다.

탈리본으로 가는 차창 밖으로 보이는 쓰러진 건물더미와 텐트를 치고 지내는 수많은 사람들의 지치고 탈진한 모습이 가슴 아팠다. 자포자기한 듯한 사람들의 모습에서는 복구의 의지를 볼 수 없었다.

탈리본에 도착하니 8명의 환자들이 가족들과 함께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11명의 아이들 가운데 3명은 끝내 지진 때문에 안타까운 목숨을 잃은 것이다.

마음 속으로 슬픔을 삼키며 수술을 시작했다. 하지만 시작한 지 불과 30여분 지났을 때 처음으로 땅이 진동하는 것을 느꼈다. 수술도구들은 마치 누군가가 밀친 것처럼 심하게 흔들렸고 전기가 나갔다. 여진이었다. 말로만 들었지 처음으로 겪는 일에 모두들 당황했다. 잠시 후 전기가 들어오고 다시 수술을 차분하게 진행했지만 수술을 마치기까지 여진은 네 차례나 반복됐다.

첫째날은 1명만 수술하는 것으로 만족하고 의료팀은 숙소로 향했다.

모두들 씻고 잠을 자려고 하는 순간 또 침대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밤 사이 여진은 세 번이나 이어졌다.

다행히 일행들은 잠을 조금 설쳤을 뿐 쌩쌩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하루에 3명씩 수술을 진행해 모든 일정을 무사히 마쳤다.

돌아오는 날 어린이 환자들과 현지 병원 관계자들에게 정성을 다해 준비한 선물을 전달하고 공항로 향하는데 갑자기 바다 저쪽 하늘에 먹구름이 일더니 장대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가는 길 만큼은 평안하기를 바랐는데 기대를 저버렸다.

1시간을 그렇게 장대비 속을 달리니 어느새 비가 그치고 차창 밖으로 맑고 영롱한 무지개가 보였다.

봉사단원들은 모두 약속이라도 한 듯이 환호했다. 무지개보다 더 아름다운 무지개를 얼굴에 그리며 휴대전화 사진기로 사진을 찍기에 여념이 없었다. 그런 우리의 모습이 좋아보였는지 기사분은 차를 안전한 곳에 멈춰주었다.

잠시 한 숨을 돌린 우리는 약속의 무지개를 각자의 가슴에 품었다. 지진을 이유로 포기할 수도 있었지만 어린 환자들을 생각하며 달려 온 우리를 향한 조물주의 선물이자 다시는 이런 재난이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는 약속 말이다.

공항에서 비행기에 오르기 전 현지 주청사 공무원들이 타르시어(주먹원숭이) 인형 목걸이를 목에 걸어 주었다.

올림픽금메달을 목에 건 선수들만큼은 아닐지라도 보람과 뿌듯함을 느낄 수 있었다.

참담함, 두려움, 눈물, 환호성과 보람을 뒤로하고 인천으로 오는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짧지만 길었던 여정만큼 몸은 무거웠지만 마음만은 편하고 가벼웠다.

 

김철수 목사•인천사랑마을이주민센터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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