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경제] 소송이 남발되는 사회

미국의 의료보험은 비싸기로 유명하다. 얼마전 방영된 SBS의 다큐멘터리 ‘최후의권력’이라는 프로그램에 의하면 응급실에서 5분받는 치료비용이 130만원, 치과의 이를 뽑는 비용이 25만원, 치아신경치료 85만원, 백내장수술비 507만원, 맹장수술비 1천513만원, 4시간정도 걸리는 외과수술비용이 4천700만원을 기록하는 등 미국의 의료비용은 상상을 초월하고 있다.

이러한 엄청난 의료비용 때문에 의료보험 또한 개인이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서고 있다. 이처럼 매달 부담해야 할 보험비용만 수백만원을 넘어서는 환경하에서는 점점 더 많은 인구가 무보험자로 전락, 현재 미국 전체인구의 20%에 육박하는 사람들이 의료혜택의 사각지대로 내몰리고 있는 실정이다.

불신이 팽배하는 사회는 소송 남발

그러면 미국의 의료산업은 왜 이처럼 점점 비싸지는 것일까? 여러 가지 이유가 지목되고 있지만, 필자는 그중 하나로 의사라면 필수적으로 들지 않을 수 없는 ‘의료행위 과실에 대한 보험’ 비용을 꼽고 싶다.

사실, 20여년 전만 하더라도 미국의 경우 의사를 상대로 한 소송이 그다지 많지는 않았었다. 그러나 이후 세월이 가면서 의료서비스에 대한 소비자로서의 환자권리가 강화되고, 거기에 더하여 일부 환자들의 일확천금성 ‘안되면 말고’ 식의 소송들이 줄을 잇게 되자, 견디다 못한 의사들은 이를 커버하기 위한 보험을 들게 된다.

그러자 보험회사들은 결과가 매우 불확실한 이러한 의료소송 비용을 커버하기 위해 매우 비싼 요율을 책정하게 됐고, 이러한 보험비용은 결국 환자들에게 전가가 되는 악순환이 일어나게 됐으며, 이러한 순차적인 ‘Defensive Medical System(방어적 의료체계)’이 결국은 전체 의료산업의 고비용구조를 낳는 원인 중 하나가 되었다는 점이다.

또 다른 예를 하나 들어보자. 최근 여성들의 사회진출이 두드러짐에 따라 더욱 빈번히 제기되는 문제 중의 하나가 바로 ‘성희롱’ 문제이다. 그런데 이같은 성희롱의 문제가 발생할 경우 상식을 통한 해결을 추구하기보다 점점 소송을 통해 해결하려는 사회적 경향이 굳어지는 것을 우리는 목격하게 된다. 이러한 현상은 바람직한 것일까?

상식선에서 해결되던 문제가 법정으로 비화되는 상황에서는 남성들의 여성에 대한 애정의 표현 태도가 위축될 것임에 분명하다. 이러한 경직적인 애정태도는 결혼에 골인하는 남녀간의 비율에 악영향을 미치게 되고, 따라서 우리는 ‘성희롱’의 사회적 이슈화가 결국 남녀관계를 경직시킴에서 오는 혼인비율의 감소 내지는 독거비중의 증가라는 크나큰 사회적 비용을 치르게 된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다.

금년도 금융업계에서의 화두 중 하나는 ‘부실 회계감사’ 문제였다. 부실화된 저축은행의 회계감사를 담당한 회계법인이 회사의 숨겨진 부실을 체크해 내지 못한 경우가 나오고, 이럴 경우 회계법인의 감사보고서를 보고 투자한 투자자들은 거액의 손실을 보게 된다. 이에 따라 손실을 본 투자자들은 연대하여 회계법인을 상대로 한 소송을 벌이게 되는데, 회계법인은 이러한 경우 때에 따라서는 엄청난 금액을 배상하게 될 수도 있는 상황이 빚어지게 된다.

회계법인의 입장에서는 그렇다고 본업인 회계감사업무를 포기할 수도 없고, 또 그렇다고 회사가 숨기려고 마음먹은 부실을 짧은 감사기간 중에 완전히 밝혀낼 수도 없는 난처한 상황에 처하게 된다. 따라서 회계법인들은 이와 같은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보험회사를 통한 ‘감사행위 과실에 대한 보험’을 드는 방안을 강구하고 있다 한다.

엄청난 사회적 비용 결국 국민이 부담

어찌보면 위에서 언급한 미국의 의료보험 산업을 연상시키는 상황이기도 하다. 여기서 한가지 확실한 것은, 이처럼 불신이 팽배하는 사회, 그리고 그로 인한 소송이 남발되는 사회는 결국 엄청난 사회적 비용을 국민 개개인이 부담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는 진리이다.

최근 불거지는 철도노조와 정부간의 갈등, 그로인한 시민들의 불편 등 막대한 사회적 비용을 보면, 과거 사회규범을 통해 상호간에 불거진 문제들을 상식수준에서 신속히 조정을 해 내던 우리 조상들의 지혜가 그리워진다.

하태형 수원대 금융공학대학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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