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문화융성, 오솔길로 가야한다

문화체육관광부는 국정기조인 ‘문화융성’의 구현을 위해, ‘새로운 문화정책의 틀’을 국민과 지역이 주도하는 상향식, 생활밀착형 정책으로 전환하겠다고 밝혔다. 아울러 지역문화의 발전과 생활 속 문화 확산 방안으로 다양한 사업을 제시했다.

그런데 그 제시된 사업들을 들여다보면, 이미 오래 전부터 시행됐거나 현실적인 벽에 부딪혀 중단되거나 변질되었던 결코 새로운 정책이 아니었다. 이에 필자는 지금 이 시점에 중요한 것은 구체적인 사업의 제시가 아니라 정책 방향에 대한 소통과 실질적인 협력이라는 점을 강조하고자 한다. 정책이 구체적인 사업까지 제시하면 일방적 하향식 지원의 틀에서 벗어나기 어렵기 때문이다.

지역 문화재단ㆍ예술가 소통 이어가는

잠시 1991년으로 돌아가 보면, 당시 이어령 문화부 장관은 ‘연극의 해’를 새로운 정책으로 발표하고 연극인 스스로 사업을 구상하도록 지원했다. 또한 1999년에는 예총과 민예총 예술가들이 ‘문화의 날’ 행사를 공동주관 함으로서 의미 있는 결실을 거두었다. 그때의 필자가 이 두 사업에 참여하며 느낀 가장 큰 수확이 바로 예술인들 간의 소통과 협력을 통한 자긍심 고취였다.

반면에 1997년 겨울을 강타한 IMF 시절, 정부의 안일한 지원정책 때문에 한바탕 연극인들이 갈등을 겪어야 했다. 당시 정부는 IMF 때문에 어려움에 처한 연극인들을 ‘공공근로사업’ 방식으로 지원하겠다는 정책을 추진했는데, 이는 오히려 예술가의 자존심에 상처만 주는 결과를 낳았다. 소통과 협력을 간과한 결과로 당연한 것이었다. 그렇다면 지금 절실히 필요한 ‘문화융성’이 강조하는 지역문화 발전과 생활 속 문화 확산을 위한 문화정책의 길은 어디로 가고 있는가?

필자는 서울문화재단의 경험을 바탕으로 지금은 용인문화재단에서 용인 지역의 문화를 위해 일하고 있지만 이곳 용인에서 느끼는 정부의 문화정책은 한없이 멀기만 하다.

그 이유는 과거의 ‘하향식 일회성 지원 방식’의 문제에서 찾을 수 있는데, 현 정부의 문화 정책에서도 그리 다른 점을 찾기 어려운 것 또한 사실이다.

문화체육관광부의 문화융성 정책은 한국문화예술위원회나 한국문화예술회관연합회 또는 예술인복지재단을 통해 사업화되고 직접 예산이 집행 되는 기본적인 틀, 즉 하향식 지원 형태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사업에 따라 이 세 기관의 차별성을 찾기 어려운 경우도 있다는 점이 더욱 그렇다.

이러한 문제는 서울을 제외한 지역에서 공통적으로 느끼는 현실이다. 특히 광역 문화재단을 떠나 기초 문화재단에서 느끼는 정부 정책에 대한 거리감은 너무도 멀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경기도 지역의 12개 기초 문화재단(고양, 군포, 부천, 성남, 수원, 안산, 안양, 오산, 용인, 의정부, 하남, 화성)은 경기문화재단을 중심으로 경기도문화재단협의회(의장 엄기영)를 구성하고, ‘지역이 주도하는 상향식, 생활밀착형 정책’을 개발하고 이를 한국문화예술위원회와 함께 공동으로 진행하는 실질적인 업무 협약을 추진하고 있다. 이는 문화융성을 위한 모범적이고 발전적이며 획기적인 사례가 될 것이다.

문화융성 정책, 오솔길을 선택해야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정부의 문화융성을 위한 정책이 지름길이 아닌 오솔길을 선택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지름길보다 당연히 불편하고 더디겠지만 오솔길을 걷는 정책이 필요하다.

문화정책이라는 동반자가 오솔길을 고불고불 걸으며, 지역의 문화재단과 예술가와 소통과 협력을 이어 갈 때 비로소 문화융성의 비전이 선명히 보일 것이다. 행정의 조급함 때문에 지름길에 돈을 뿌리며 휭하니 지나가 버리는, 그래서 결국 아무 것도 남는 것 없는 오류를 반복하지 않기를 바란다. 문화융성을 위한 문화정책, 부디 오솔길로 가기를 바란다.

김혁수 용인문화재단 대표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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