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경제] 이제 국회의 입법폭력 막을 때

국회는 정부개정안에 없었던 부자에 대한 소득세율 인상안을 새해 하루 전에 타협했다. 이른바 ‘부자증세’라는 소득세 개정안이다. 38% 최고 세율이 적용되는 소득세 과표구간을 3억원에서 1억5천만원으로 인하한 것이다.

부자가 세금을 더 낼수 있으나, 그 절차를 제대로 밟아야 한다. 그래야 부자들의 자발적 동참을 유도할 수 있고, 국회가 지켜야 할 예의다. 그러나 당사자들에게 중요한 개정안이 새해 이틀전에 언론을 통해 알려졌다. 한마디로 국회의 입법폭력이다.

대의 민주주의란 국민들의 대표인 국회의원들에게 국민들의 의견을 위임한다. 논리는 정책수립하는 행정비용과 전문성 때문이다. 그러나 이 제도가 제대로 작동하기 위해선, 국회에서 논의되는 개정안을 국민들에게 충분히 이해시키고, 의견을 듣는 절차가 중요하다. 정부의 세법개정안은 지난해 8월경에 나왔다. 국회는 이를 바탕으로 여야간 논쟁과 합의를 거쳐야 한다.

그 과정에서 국민들의 이해와 의견이 수렴될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이 있다. 그러나 이번 국회를 통과한 소득세 개정안은 정부안과는 별개로 이틀만에 처리됐다. 부자증세안을 비판하는 게 아니다. 민주주의는 절차에 대한 합의이므로, 최소한 절차도 거치지 않은 개정안은 소수국민을 우습게 안 것이다.

민주주의의 본질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한다. 형식논리로 보면 전혀 문제가 없다. 국민의 대표기관인 국회가 합의한 개정안이므로 조세법률주의 관점에선 문제가 없다. 일찍이 자유주의 경제학자인 하이에크는 ‘무절제한 민주주의(unlimited democracy)’란 용어로 민주주의 실패를 설명했다. 국회에서 다수결이면 어떤 법도 통과될수 있는 현실이면, 반대로 법을 통해 얼마든지 국민의 경제자유를 침해할 수도 있다.

과반수가 찬성하면 무조건 법이 되는 우리 제도는 분명 문제가 있다. 소수 부자에 대한 증세정책은 다수의 감성적 지지를 얻을지 몰라도 결국은 국민을 분열시킨다. 부자이기 때문에 경제적 자유를 침해해도 된다는 논리와 법적 절차는 분명 문제가 있다.

이러한 무제한적 민주주의로 인해 발생하는 결과는 ‘정치실패(political failure)’다. 정치가 국민을 잘 살게 하지 않고 오히려 대립과 분열시키면 그 정치구조는 개혁

돼야 한다.

세금은 국민에게 민감하게 영향을 미치는 정책이다. 지난해 8월 정부의 세법개정안에 중산층 이상이 연간 16만원 정도 더 부담하는 안이 나왔을때, 우리 사회는 극심한 혼란을 겪었다. 그만큼 세금정책은 국민들에게 이해와 설득이란 미세조정이 필요한 분야다.

민주주의 역사의 발전은 세금역사와 맥을 같이한다. 절대권력 혹은 정부로부터 국민을 보호하기 위해 ‘조세법률주의’란 장치를 만들었다. 그러나 지금 국회는 국민을 보호하라고 주어진 입법권력으로 국민의 경제적 자유를 침해하고 있다.

부자라서 세금을 더 내라는 억압적 논리는 소수에 대한 다수의 폭력이다. 세금정책이 어려운것은 형평성 때문이다. 형평성은 부자가 더 부담해야 하는 형평성도 중요하지만, 전체 세 부담에서 차지하는 비중의 형평성도 생각해야 한다. 부자 1%가 전체 소득세수의 49% 차지하는 현실이다. 정부가 복지재원을 위한 세수확보가 필요하면 국민들의 소득세 부담을 조금씩 올려야 한다.

전체 국민 중에서 소득세 내는 국민이 OECD 국가 85% 수준이나 한국은 절반뿐이다. 소득세제는 누진구조이므로 어차피 부자들이 더 높은 세금을 부담할 수밖에 없다. 이제 국회의 입법폭력을 규제해야 한다.

정부의 개정안에 대해선 국민 공감대를 구할 과정이 법률로 명시돼 있다. 그러나 국회안은 하루 전에 통과시켜도 규제할 방법이 없다. 예산안 통과시 정부동의가 필수인 것처럼, 국회의 세법개정안도 반드시 정부동의를 거치도록 해보자. 이제 국회의 폭력입법으로부터 정부가 나서야 할 시대가 되었다.

현진권 한국경제연구원 사회통합센터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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