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다 잊어(Let it go)

연역법을 이용한 대표적인 삼단논법이 ‘사람은 죽는다. 소크라테스는 사람이다. 고로 소크라테스는 죽는다’이다. 두 개의 참 명제에서 새로운 참 명제를 도출하는 방법인데, 결론은 우리는 죽는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고대 로마에서는 전쟁에서 승리한 장군 뒤에서 노예들이 ‘머멘토 모리(memento mori)’라 외쳤다. 라틴어로 ‘죽음을 기억하라’는 뜻인데, 승리에 자만하지 말고 항상 겸손하라는 의미로 죽음의 상기를 통한 삶의 엄숙함을 알도록 하는 조치였다.

우리는 언제가 죽음의 순간을 맞이한다. 아무리 돈이 많고 권력이 있어도 죽음만은 피할 수 없다. 고 스티브 잡스는 죽음에 직면한 뒤에도 “죽음은 삶이 만든 최고의 발명품”이라며 의연해졌지만, 죽음은 누구에게나 두려움의 대상이며, 피할 수 없는 현실이자 삶의 일부이다. 우리의 의식성장을 돕는 새로운 차원의 ‘삶’이라고 하지만, 부정하고 싶은 게 인지상정일 것이다.

죽음의 두려움을 이겨내는 노력은 예나 지금이나 똑같다. 고대 그리스 철학자였던 에피쿠로스는 “우리가 존재하는 한 죽음은 우리와 함께 있지 않으며, 죽음이 왔을 때 이미 우리는 존재하지 않는다“ 고 하면서 죽음을 두려워하지 말라고 했다. 또 ”잘 사는 것과 잘 죽는 것의 연습은 동일하다“는 말로 행복한 죽음을 위해 행복한 삶을 살 것을 주문하고 있다.

미국의 정신의학자인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에 따르면 죽음을 앞둔 사람들은 대체로 부정, 분노, 타협, 우울, 수용이라는 5단계의 심리적 정서를 체험한다 한다. “아닐 거야“라는 부정, “하필이면 내가” 라는 분노, 불가피한 사실을 연장하고자 하는 타협, 자신의 상태를 더 이상 부정할 수 없어 우울해지고, 결국 현실을 받아들이는 수용의 단계를 밟는다고 한다. 이러한 모습이 우리 모습인데, 아둥바둥 뭔가에 탐욕스럽게 집착하고 다른 사람을 속이고 해치고 있다.

요즘은 임종체험 서비스, 엔딩노트 제작 등 죽음을 이해하려는 노력도 다양해지고, 웰다잉 산업박람회까지 열린다. 사후 세계가 있느냐 없느냐에 대한 논의도 다양하다. 스티븐 호킹은 “천국은 없다. 사후세계는 죽음을 두려워하는 이들이 만들어낸 동화일 뿐이다”라고 했고, 심리학자인 폰 프란츠 박사는 “죽음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알 수 없는 세계로 가는 것”이라고 했다.

이 시점에서 조물주에게 사람은 왜 태어나고 사라져야 하는지 진지하게 묻고 싶다. 우리의 삶의 진정한 의미와는 무관하게 매일 매일 인위적으로 던져진 일에 치여 어디로 가는지 모른 체 앞으로만 가고 있는 것 같다. “태어나기 전에 열 달을 준비하게 하는 신은 죽을 때는 아무 준비도 시키지 않는다“는 어느 작가의 말처럼 아무 준비도 없이 그곳을 향해 달려간다.

태어난 모든 것이 사라져야 하는 것이 숙명이라면 다시 태어나 살고 싶은 그런 삶을 살고 싶다. 가족 품에서 잠들며, 떠날 때 사랑하던 사람에게 마지막 인사를 나눌 수 있는 그런 삶. 천상병 시인의 ‘귀천’이라는 싯구절처럼 구름 손짓하면 이 세상 소풍 끝내고 홀연히 가서 삶이 아름다웠더라고 말할 수 있는 그런 삶을 살고 싶다.

아침에 눈을 뜨며 작은 죽음에서 깨어났음을 감사하며, 오늘이 마지막인 것처럼 열심히 살고 싶다. 애니메이션 영화 겨울왕국의 노래 가사처럼 당당히 살아가리라. Let it go(다잊어)!

임창덕 사회복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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