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시론] 역사 속의 책, 책 속의 사람

아침저녁의 선선한 기운은 가을이 성큼 우리 곁에 다가와 있음을 느끼게 한다. 어떤 시인은 가을의 정경을 ‘밤하늘에 휘영청 밝은 달(秋月揚明輝)’이라는 시적 언어로 그려내기도 하지만, 우리에게 가을은 결실과 사색의 시간이고, 무엇보다 책읽기 좋은 ‘독서의 계절’이다.

문화체육관광부가 발표한 ‘2013 국민독서실태조사’를 살펴보면 우리나라의 성인 연평균 독서량은 9.2권(인천지역 성인 연평균 독서량 8.9권)으로, 지난 2008년 11.9권에서 매년 수치가 하향 곡선을 그리고 있다. 미국을 비롯한 서구 선진국들의 성인 월평균 독서량이 약 6권 이상인 현실을 감안한다면 가을을 독서의 계절이라고 하기가 무색할 정도다.

특히 교육열 높기로 세계에서 둘째 가라면 서러운 우리 사회에서 독서량이 다른 나라에 비해 현저히 떨어진다는 점은 우리의 교육열이 주로 학생들의 시험 성적과 입시에 집중됐기 때문이다. 물론, 한 사회의 독서를 양(量)의 문제로만 해석할 필요는 없다. 한 권의 책이라도 오랜 시간 동안 음미하면서 읽는 것이 오히려 독서의 맛과 멋을 더 오묘하고 깊게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사람이 얼마나 많은 책을 읽었느냐’라는 것보다 ‘한 사회에 오랜 시간 동안 읽혀온 책이 어떤 책인가’에 관심을 가진다면, 우리는 책을 통해 그 사회의 문화와 전통, 또는 사람들의 삶에 대한 사고방식을 쉽게 유추할 수가 있다. 이 질문을 우리 스스로에게 던져보기로 하자. 필자가 알기로 우리 역사에서 가장 오랫동안 읽혀온 책 가운데 하나가 ‘논어(論語)’이다.

유사 이래 많은 젊은이와 지식인들에게 ‘논어’가 가장 많이 읽혔다는 사실에 대해 일부 독자들은 반신반의 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이 책이 1천600여년 이상 한반도에 존재했던 다양한 왕조의 젊은이와 지식인들에게 읽혀왔다는 점은 엄연한 역사적 사실이다.

‘삼국사기’나 중국·일본의 역사 기록을 참고하더라도 고구려, 백제, 신라 이후 고려왕조에서 학교 교육이나 공부와 관련된 기록을 본다면 ‘논어’는 학교 교육의 주요 교과로 지정돼 왔으며, 국가의 인재 선발을 위한 공부의 주요 도서로 선정돼 조선시대까지 독서의 중심에 놓여 있었다.

그렇다면 ‘공자 왈’로 대변되는 이 책이 우리 역사에서 가장 오랫동안 읽힐 수 있었던 힘은 어디에 있을까? ‘논어’에는 스승으로서 공자와 제자들의 대화와 담론의 모습, 그들의 일상생활의 면모, 권력자들과의 대면 과정이 생동감 있게 묘사돼 있다. 이 책에서 공자를 공자답게 만들어준 사람들은 위정자나 권력자가 아니라 그의 제자들이다. 공자를 위대하게 만든 것은 그의 초인적인 능력이 아니라 제자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스승 공자와 제자들 사이에 이뤄지는 대화의 흐름을 쫒아 이 책을 읽다보면 어지러운 세상에서 서로에 대한 존경과 믿음으로 동고동락하는 사제(師弟)간의 아름다운 모습, 그리고 진리를 향한 이들의 진지한 삶의 자세를 엿볼 수 있다.

‘논어’에는 인간이 성취하고자 하는 삶의 목표와 이상이 있다. 특히 이들이 추구하고자 하는 삶의 핵심 가치(仁)와 그들이 이룩하고자 하는 세상의 규범(禮), 성숙한 인간(君子)에 대한 비전을 쉽게 만날 수 있다.

이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우리는 공자를 성인(聖人)으로서 영웅화하는 일보다, 끊임없는 노력으로 자신을 완성해 나가는 공부하는 인간 공자를 발견하게 된다. 따라서 이 책은 인생의 중요한 진로를 결정할 때, 교육자, 선각자, 또는 멘토(mentor)로서 공자를 만나게 해준다.

공자 이후 우리 학문의 정통성을 계승하고 있는 학자나 사상가들은 항상 자신을 완벽한 인간, 완성된 존재로 내세우기보다는 ‘배우기 좋아하는(好學) 사람’으로 인정받고 싶어 한다.

배움을 사랑하고 좋아하는 길이 자신의 사표인 공자를 따르는 길이고, 자기를 완성하는 문명적인 활동임을 그들은 깨닫고 있었기 때문이다.

고대혁 경인교대 윤리교육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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