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시론] 우리 모두 恩師가 돼야 하는 이유

은사(恩師)란 흔히 훌륭한 스승을 가리켜 부르는 호칭이다. 가장 기억이 남는 은사님에 대한 이야기를 통해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에 은사의 개념이 조금 더 폭넓게 확장됐으면 한다.

서른 한 살의 늦은 나이에 혼자 유학을 떠났던 첫 해의 일이다. 지도교수를 그리스 출신의 미국 교수님으로 처음 정해 그 분의 연구실에서 첫 학기의 생활을 시작하게 됐다.

공대에서는 지도교수님을 확정해야 학비와 생활비를 마련할 수 있었기에 심적으로 큰 부담을 안은 시기였다. 이 분과 매주 수요일 오전 아홉시 미팅을 하게 됐는데, 세 과목의 수업을 들으면서 한주에 한번 교수님과 함께 하는 이 시간은 정말 중요한 시간이었다.

전날 화요일에는 거의 밤을 새고 아침에 만나 교수님이 내주신 주제에 대해 교수님께 설명을 하며 지도를 받았다. 문제는 서툰 영어였다. 몇 장으로 수학공식을 써가며 풀어놓았어도 말로써 설명을 하지 못하는 답답함이 큰 문제였다.

몇 주 동안 미팅을 마치고 나와 연구실에서 긴 시간 고민한 끝에 교수님께 장문의 이메일을 썼다.

제가 영어가 짧아 생각한 것을 마음대로 표현하지 못하니 교수님께서 참아달라는 내용이었다.

이러한 메일을 보내야 될지 말지 오랜 생각 끝에 엔터키를 눌렀다.

그런데, 5분이나 됐을까, 바로 답장이 왔다. 교수님께서는 ‘너의 영어는 충분하다. 나의 일은 너가 성장하는 것을 지켜보는 것이다. 나는 너와 함께 이 문제를 비롯해 더 큰 것도 함께 해낼 것이고, 너와 함께 있어 행복하다.’ 등의 내용이었다. 이 메시지가 학업을 마치기까지 큰 위로와 힘이 됐다.

사연이 있어 일년 반의 시간이 지난 뒤에 지도교수님을 변경하게 되는 아픔이 있었으나 최종 발표를 하고 졸업을 하게 됐다.

귀국하기 며칠 전에 교수님을 찾아가 이제 돌아가게 됐다고 하며 발표한 주제에 대한 설명을 드렸다. 교수님께서는 “너가 성장했구나”라는 말씀을 해주셨고 은은한 미소로 악수를 청해주셨다.

교수님께서는 학생의 성장을 지켜보는 것이 기쁨이었고 본인의 의무라고 생각하셨다. 저는 이 분을 은사님이라고 생각하며 살아오고 있다.

갓 졸업한 학생들이 직장에 대해 너무나 낯설고 어려운 분위기에서 아파하는 모습을 종종 듣게 된다. 그래서, 무엇보다 저와 함께 있는 학생들의 성장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된다.

누군가 저의 성장을 위해 묵묵히 지켜보아주며 끊임없이 지지해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 제 개인에게 무엇보다 큰 위안이 되었듯이 저 또한 이와 같은 관심과 지지를 주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우리 시대에 교단에 계는 선생님에게 이와 같은 가르침을 받는 것 또한 큰 행복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더 넓게는 우리가 몸담고 있는 직장에서 은사와 같은 마음으로 서로를 대한다면 현재의 날 선 듯한 긴장감 있는 삶이 좀 더 나아지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직장인 이직의 주요원인중 하나가 상사와의 갈등입니다. 업무의 성과를 높이기 위해 여러 방법으로 상사가 부하직원을 독려할 수는 있으나, 그보다 먼저 마음의 대화를 통한 신뢰가 필요합니다. 자신의 성장을 위해 상사는 때로는 강하게, 때로는 약하게 다그칠 때 제 은사님께서 보여주셨던 마음의 대화가 바탕에 깔려있다면 상사와의 갈등으로 인한 어려움이 함께 해결해야할 의지로 뭉쳐져 좋은 성과로 이어지리라 생각된다.

시간이 가면 누구나 상사가 된다. 이것이 우리 모두가 은사가 되어야 하는 이유라고 생각된다.

/이재성 인하공업전문대학 화공환경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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