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시론] 문화융성과 지역문화

“계양산 산 빛이 지극히 아름다운데(桂陽山色極嬋娟) / 온 고을 풍년 들어 최상의 토지로세(百里秋登上上田) / 백성 잘 살고 정사 균평하면 그만이니(民富政平斯可矣) / 누가 다시 무성현의 고사를 잇겠는가(誰能更續武城絃)”

이는 조선 문명의 르네상스를 꽃피웠던 시기에 정조 대왕이 1797년 가을(8월) 경기도 화성에 안장된 아버지 사도세자의 묘소를 참배하러 가는 도중 인천 부평 도호부(현 인천 부평 초등학교 소재) 관아에 들러 계양산과 부평의 풍광을 노래한 시이다.

정조는 인천 ‘부평(富平)’의 이름에 ‘백성들이 잘 살고, 정치가 잘 다스려진다(民富政平)’는 의미를 부여함으로써 자신의 정치적 지향을 담아내기도 했다. 정조 대왕 이외에도 많은 사람들이 계양산과 인천의 풍경을 노래한 다양한 작품을 역사 기록 속에 남기고 있다. 고려중기 백운거사 이규보, 조선 인조 때 대학자 상촌 신흠 등의 시 속에도 계양산의 아름다운 경치를 노래하고 있는 글들이 보인다.

조선 후기 우리의 고유 색깔을 한껏 드러내면서 학문과 사상, 문화와 예술 분야에 난만(爛漫)한 발전을 이룩했던 문화 절정기를 ‘진경시대’라 하듯이 이제 21세기 초반 세계화의 물결 속에서 현 정부는 ‘경제부흥’, ‘국민행복’, ‘평화통일 기반 구축’과 더불어 ‘문화융성’을 4대 국정기조로 선정했다. 이 가운데 문화융성은 글로벌 시대의 국가 품격 향상과 국민들에게 행복한 삶을 위한 정부의 실천공약으로서 의의를 가진다.

이러한 약속 실천을 위해 정부는 지난해 5월 국무회의에서 ‘문화 융성위원회의 설치 및 운영에 관한 규정안’을 의결했고, 같은해 7월 25일 대통령 직속 정책 자문기구로 ‘문화융성위원회’가 공식 출범했다. 이 위원회는 국민의 문화적 권리를 보장하고 문화의 가치와 위상을 제고한다는 설치 목적에 따라 우리나라의 문화융성을 위한 국가 정책과 전략 수립, 범정부적 협력, 국민의 공감대 형성 등과 관련해 대통령에게 자문하는 일을 담당한다.

그러나 만약 다문화 사회, 세계화 시대에 중앙 정부 주도의 문화 정책이 일시적이고 단편적인 문화지원사업에만 초점이 맞춰진다면 정부가 의도하는 문화융성 정책이나 관련 사업은 한계를 지닐 수밖에 없다. 문화융성은 자유로운 시민들의 건전하고 성숙한 시민의식을 바탕으로 시민들의 일상적 삶이 이뤄지는 생활공간, 곧 지역 사회의 문화에 대한 시민적 교양이 토대가 돼야 지속적으로 이루어질 것이다.

지역문화의 활성화는 지역 주민의 삶의 양식 전반에 걸친 의식구조와 관습, 역사 속에 살아있는 지역의 이야기 속에서 출발해야 한다. 지역문화 활성화를 위해 중앙과 지방정부는 지역문화 진흥과 지역문화 활성화를 위한 법과 제도 및 행·재정적 지원책 수립을 위해 공동 노력을 경주하는 한편, 지방정부는 독립적이고 특화된 지역 문화 창달을 위한 정책과 실천 방안을 개발·추진해야 한다.

인천과 이 지역이 지니고 있는 수많은 역사 속의 이야기들이 지역 주민들의 글과 말을 통해 일상 속에서 새롭게 태어난다면 이 지역 문화는 더욱 더 활기를 띄게 되고 국가의 문화융성은 그 토대가 한층 더 굳건해 질 것이다.

고대혁 경인교대 윤리교육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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