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시론] 인하, 인천에 소중한 이름

인천에게 ‘인하’는 이민의 아픈 뿌리를 통해 맺어진 귀한 열매의 이름이다. ‘인하’는 인천의 ‘인’과 하와이의 ‘하’가 합쳐진 교명이지만, ‘인하’는 인천시민뿐 아니라 대한민국의 해외 동포들에게까지 이민의 아픔을 함께 느끼며 미래를 바라보게 해주는 귀하고 의미 있는 이름이다.

19세기 후반의 대한제국은 대내외적인 사회적 혼란과 가뭄, 무엇보다 일본의 대량 곡물의 반출로 인해 빈곤의 늪에서 허덕였다.

당시 하와이에서 중국과 일본 노동력의 대체인력으로 조선인 노동자를 선택하게 되어 대한제국의 공식적인 첫 이민이 성사된다.

1902년 12월 22일 121명의 첫 이민단이 고향인 인천 제물포를 떠나 일본에 도착하게 된다. 신체검사를 통과한 최종 102명이 12월 24일 나가사키 항에서 미국의 갤릭호(S.S. Gaelic)를 타고 1903년 1월 13일 하와이 호놀룰루에 도착해 오아후섬에서 눈물겨운 이민생활을 시작한다.

1905년을 전후로 약 5천명의 한인 노동자들이 사탕수수농장에서 일하게 되는데, 어른 남자의 월급은 한 달에 17달러, 여자나 소년들은 하루에 50센트 정도를 받았다. 이들은 타향에서 광복 이전에는 독립운동자금을 후원하고 광복 이후에는 조국에 대한 교육적 열망으로 열매를 맺게 된다.

하와이 교포이주 50주년이 되는 1952년, 미주 한인들은 배고픔을 이겨낼 수 있는 조국의 미래는 공학에 있다고 생각해 동양의 M.I.T를 만들고자하는 뜻을 모으게 된다.

하와이에서 한인기독학원을 운영했던 초대 이승만 대통령이 발의하고, 하와이 이민자들의 후원금과 한인기독학원 처분대금 및 정부지원금이 설립자금이 됐다.

인천시로부터 현재의 부지를 교지 받아 1954년 4월 인하공과대학(I.I.T)이 개교한 뒤 인하대학교라는 종합대학교로 승격해 현재에까지 이르고 있다.

1968년 한진그룹으로 재단이 옮겨지고, 인하정석학원의 60여년의 역사 속에서 인하대학교, 인하공업전문대학, 인하사대부고, 인하사대부중, 정석항공고등 총 5개의 학교가 인천과 함께 성장해 왔다.

우리나라 공식 이민의 첫 출발지인 인천에 하와이교포이주 50주년 기념사업으로 인하대학교가 세워지고, 미주한인이민 100주년 기념사업으로 한국이민사박물관이 월미도에 세워졌다.

한국이민사박물관 제4전시실에 ‘인하대학교의 설립은 하와이 교포들의 정신적인 귀환이자 코리안 디아스포라의 염원을 실현한 상징이기도 하다’라고 기록돼 있다.

대한민국의 어느 대학도 갖지 못하는 이민사의 상징적인 이미지와 조국과 해외동포 사이를 연결해줄 수 있는 고리가 ‘인하’라는 이름에 새겨져 있음을 인천시와 인천시민은 기억해야 한다. 또한, ‘인하’의 이름아래에 있는 모든 이들도 인천에게 어머니를 대하듯 소중하고 감사한 마음을 가져야 하겠다.

이재성 인하공전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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