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방 전성시대’ 아련한 추억… ‘책방 시련시대’ 변화 몸부림
■ 대한서림·씽크빅문고, 인천의 자존심을 지키다
“오늘 학교 끝나고 뭐할까? 그래 오후 7시에 대한서림 앞에서 보자.”
인천시 중구 동인천역 건너편에 자리 잡은 6층짜리 건물 앞은 언제나 사람들로 북새통을 이룬다. 휴대전화가 없던 시절부터 학생은 물론, 연인 등 수많은 사람이 약속 장소로 정하는 이곳 건물은 ‘대한서림’이다.
대한서림의 역사는 한국전쟁이 끝난 직후인 1953년께로 거슬러 올라간다. 황해도에서 인천으로 피난온 한 문인이 동인천역 인근에 작은 책방을 열며 최초 대한서림이라는 간판을 내걸었다.
이 문인은 김순배 현 대한서림 대표(70)의 장인이다. 한양대 기계과를 졸업하고 건설회사에 다니던 김 대표가 장인으로부터 대한서림 운영을 넘겨받은 때는 1978년.
건물 1개 층에 불과했던 대한서림은 이로부터 10년 후인 1989년 김 대표가 옆 건물을 매입하며 6층짜리 현재의 대한서림으로 탈바꿈한다.
건물 외벽 투명한 유리로 보이는 엘리베이터는 당시 연평도 학생들까지 견학 오는 등 당시엔 최신식 명물이었다.
대한서림은 외형은 물론, 독보적인 내부 시스템으로도 주목받았다. 김 대표가 건설회사에서 자재과장을 했던 경험을 살려 도입한 ‘책 재고 관리 시스템’과 이후 선보인 ‘책 전산화 시스템’이 바로 그것이다. 지금의 서점 시스템 구축에 선구자 역할을 한 셈이다.
대한서림은 이후 소매시장은 물론 도매시장도 석권, 인천 전 지역과 충남지역 대학 도서관에까지 책을 납품하는 등 전국단위로 발을 넓힌다. 직원 120여 명, 연매출 150억 원의 기업형 서점의 등장이다.
중구에 대한서림이 있다면, 부평구엔 ‘씽크빅 문고’가 터줏대감으로 자리 잡고 있다.
부평역 지하상가에 있는 씽크빅 문고는 대한서림보다 늦은 1999년 틀을 갖췄다. 당시 국내가 국제통화기금(IMF)체제의 극심한 불황임에도 노태손 대표(55)는 400평 점포에 무려 20억 원을 투자해 인기가 한풀 꺾인 서점을 개점하며 투철한 문학사랑을 고집했다.
‘씽크빅’이란 상호도 ‘큰 사람·큰 생각’을 추구하는 노 대표의 의지가 담겼다. 같은 씽크빅 브랜드를 가진 한 대기업이 상표권 소송을 걸어오기도 했지만, 상표권에 대한 무지탓에 상표 등록은 먼저 못했어도 사업자등록을 노 대표가 먼저 했다는 법원 판단으로 씽크빅 상호를 지킬 수 있었다.
특히 오래도록 문구점만 운영해 서점 노하우가 없었던 노대표의 전문경영인(CEO) 도입 결정이 돋보였다. 노 대표는 당시 국내 최고 명성을 자랑하다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서울 종로서적 이철지 사장을 씽크빅 문고 1호 CEO로 전격 영입했다.
그 당시 갑작스런 대형 서점의 등장에 주위 서점의 책값 할인 움직임에는 ‘정가 고수’로 맞대응했다. ‘책값 깎기는 저자에 대한 모욕’, ‘출혈 경쟁보단 상생’, ‘문화활성화공간 제공’ 등이 노 대표와 이철지 CEO가 가진 서점에 대한 철학이었기 때문이다.
최근 ‘단일 면적 최다 지하상가 점포의 수’로 세계 인증까지 받을 정도로 엄청난 유동인구가 상주하는 부평지하상가의 입지에 힘입어 씽크빅 문고는 지역 랜드마크로 자리 잡게 된다. 현재 노 대표는 ㈔인천시 지하도상가연합회 이사장직을 맡으며, 인천 내 수많은 상인을 대표하고 있다.
2014년 현재, 대한서림과 씽크빅 문고는 인천의 한 지역을 대표하며 문학 자존심을 지켜오고 있다.
■ ‘향토서점’의 시련… 그래도 출구는 찾아야 한다
현재 대한서림 1층 정문을 열고 들어서면 그윽한 커피 향과 고소한 빵 냄새가 먼저 손님을 반긴다. 2층엔 카페 좌석과 빵 굼터가 자리 잡고 있다. 책으로 빼곡했던 1·2층 공간이 이처럼 탈바꿈한 것은 지난 2012년이다.
김 대표는 그동안 맥도널드와 스타벅스 등 글로벌 프랜차이즈 업체의 임차 제안도 거절하며 버텼지만, 결국 시련의 바람을 이기지 못했다.
어쩔 수 없는 결정이었지만, 그는 60여 년 대한서림 간판보다 큰 빵집 간판이 걸리는 날 내내 뒤돌아 서 있을 수밖에 없었다. 120명에 달하던 직원 수는 현재 빵집 직원 포함 20여 명에 불과하다.
씽크빅 문고 한편에도 2008년 카페가 들어섰다. 올해 초엔 헤드폰·이어폰 등 전자기기 판매부스까지 한 공간을 차지했다. 무료택배 배송 서비스(5만 원 이상 구매 시)도 본격 가동했다.
10여 년간 점포 임대료와 직원 급여만 밀리지 않을 정도로 매출이 나는데 익숙했던 노 대표도 ‘적자 전환’ 갈림길에선 결단을 내려야만 했다.
인터넷과 스마트폰 보급 확대, 인터넷 서점 등장으로 이처럼 인천을 호령하던 대한서림과 씽크빅 문고는 생존을 위한 변화에 전전긍긍하고 있다.
설령 서점 이외의 일을 할지라도 책의 고집만은 놓지 않고 있다. 빵집과 카페는 ‘책’ 보기가 전제된 공간이며, 기타 수익 점포는 서점 운영을 어떻게든 끌고나가기 위한 수단에 불과하다.
문제는 오프라인 서점의 출구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들 서점의 대표는 이구동성으로 ‘제도 개선’을 요구한다. 최근 개정된 도서 정가제에 대해선 허울뿐이라며 쓴소리를 아끼지 않는다.
김 대표는 “오프라인 서점 마진이 통상 25%다. 현 제도상 15%까지 할인하면 결국 10% 남는데, 이것으로는 직원 월급조차 제대로 줄 수 없다”며 “할인은 필요 없다. 처음부터 도서 정가를 올바르게 책정한 뒤 그 가격에 그대로 파는 진정한 ‘정가제’ 도입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노 대표는 “중요한 건 책을 자주 보는 문화를 조성하는 것이다. 우선 문화바우처 사업의 독서 관련 범위를 확대하는 방법이 있다.
또 도서구입을 위해 출발한 도서상품권·문화상품권의 사용 범위도 너무 넓은데, 온누리 상품권처럼 하나의 목적에만 쓰이도록 조정한 뒤 기업 등에서 의무 구매해 주는 것도 독서 활성화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신동민기자
[Interview] 김순배 대한서림 대표
책과 만남의 공간 확충 없이
‘독서문화 활성화’는 공염불
“책을 접할 기회가 많아야만, ‘책 읽는 문화’가 살아납니다.” 김순배 대한서림 대표는 “서점이 불황을 맞게 된 근본적 원인은 유통 구조의 변화보단 ‘책 읽는 문화’가 없어졌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현재 온라인이든 오프라인이든 서점에서 책을 사는 경우가 줄고 있는데 독자 접근성이 떨어지면 결국 출판사가 망하고, 작가도 없어져 책을 읽고 싶어도 읽을 수 없는 상황이 돼버린다”며 “책을 만날 공간이 없어졌는데, 책을 읽자고 하는 구호는 모순”이라고 설명했다.
김 대표는 또 단순 지식·정보 습득에만 그치는 인터넷의 병폐에 큰 우려를 내비쳤다. 그는 “식품도 인스턴트, 지식·정보·감성 전달도 인스턴트, 인간의 생각마저 간편함만을 추구하는 생활 습관도 책 읽는 문화 쇠퇴에 한몫했다.
요즘 책을 읽고 마음이 찡했던 경험이 있는 청소년이 얼마나 되는지 되묻고 싶다”며 “지식·정보가 전부가 아니다. 정신적 양식이 되는 시집·수필·소설 등을 읽는 게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 대표는 “국가 정책에도 독서 문화 활성화가 소외돼 있는데, 국민 감성이 메마른 것에 대한 병폐는 분명히 국가로 부메랑처럼 돌아올 것”이라며 “책을 읽자는 구호만 외치지 말고, 정부가 나서 책을 만날 수 있는 공간 마련에 앞장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신동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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