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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리뷰] 도립국악단 기획공연 ‘브루스니까 숲의 노래’
문화 리뷰

[공연리뷰] 도립국악단 기획공연 ‘브루스니까 숲의 노래’

의미있는 절반의 성공… 국악의 변신 시동 걸었다

무모하게만 보였던 도전은 성공했다. 기본기가 힘이었다.

하지만 불모지에서의 첫 시도인만큼 시행착오는 불가피했다. 결국 절반의 성공이다. 그럼에도 ‘성공’에 마음이 기운다.

그 도전이 얼마나 힘든 시작이었는지, 그것만으로도 얼마나 많은 가능성을 제시했는지 짐작가기 때문이다. 경기도문화의전당과 경기도립국악단의 기획 공연 <브루스니까 숲의 노래> 얘기다.

이 작품은 한국의 근·현대사인 사할린 동포이야기를 경기민요와 서도민요를 중심으로 풀어낸 음악극이다. 묽직한 역사를 대중에게 낯선 ‘민요’를 전면에 내세워 다큐멘터리 극 형식으로 전달하는, 그야말로 도전이었다.

실험 정신 높은 작품 제작에는 ‘사천가’와 ‘억처가’ 등으로 판소리의 현대화를 이끈 남인우 연출, 동명 연극으로 선보였던 김민정 작가, 2014 아르코가 주목하는 젊은 예술가인 양승환 작곡가 등이 참여했다.

이들이 완성한 극 시작 ‘숲의 노래’ 10분은 압도적이었다. 음악, 연기, 무대영상 등 삼박자가 제대로 합을 이뤘다.

서늘하게 마음을 후비는 도립국악단의 연주와 시적인 무대 영상은 압권이었다. 국악기 연주로 비쩍 마른 나무를 비집고 매섭게 휘몰아치는 눈보라를 실감나게 시각화했다. 숲, 쓰레기 쌓인 허허벌판, 잡아먹을 듯 출렁이는 강 등으로 시시각각 변하는 무대 영상은 함축적이면서 극적이었다.

선율 사이로 소품 하나 없는 담백한 계단식 무대에 등장한 여주인공 중년의 ‘따냐’(함영선 도립국악단 민요팀 상임단원). 무대막에 상영되는 풍설 속 브루스니까(월귤나무) 숲에서 힘겹게 한 걸음 내딛는 그녀는 창작 민요 ‘간다’를 부르며 이야기가 시작되기도 전에 심금을 울렸다.

뒤이어 등장한 어린 따냐(하지아 부수석단원)도 ‘사할린에 사는 조선인’의 고단하고 한많은 삶을 민요와 흡인력 있는 눈빛으로 자연스럽게 전달하며 가슴을 때렸다.

하지만 이토록 강렬한 10분을 뛰어넘는 장면은 더 이상 나오지 않았다.

해방 직후부터 2000년대까지의 긴 이야기를 민요도 많이 들려주면서 모두 말하려 한 욕심이 과했던 탓이다. 보따리 풀기 바쁘게 다음 장을 준비하는 장돌뱅이처럼, 안타까웠다.

나래이터의 지나친 장면 설명, 직설적인 대사, 다큐멘터리식 장면 등은 감정이입에 방해가 됐다. ‘애달픈 근현대사에 객관적 거리를 유지하겠다’는 연출의도와 달리 교육극처럼 공감과 깨달음을 주입하는 분위기였다.

아쉬워도, 눈보라 속 브루스니까 빨간 열매처럼 가능성은 보여줬다. 이 작품으로 난생 처음 ‘민요 부르는 배우’가 된 단원들의 프로다운 적응력처럼 국악도 기본이 탄탄하다면 대중성을 얻을 수 있음을.

류설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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