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사회에 무너지는 소리가 곳곳에서 들려 오고 있다. 정치권에서는 진영논리만 있지 타협은 없고 기업에서는 분쟁만 있고 생산성은 없다. 대학에서는 성추행 소리만 들려오고. 공직사회의 윤리 의식은 사라진 지 오래다.
이혼율은 세계 최고이고 출산율은 세계최저이다. 가정이 파탄 나고 가족이 없는 이유다. 우리말 장단은 사라지고 고저는 없으며 국적 없는 단어나 뜻 모를 말만 무성하다. 노래에서 음율은 없어지고 율동만 난무한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 아니 되어 가고 있을까? 우리의 언어와 생각 그리고 선율의 밑바탕에는 천지인 3재 사상이 깔려 있다. 위로는 하늘이요 아래로는 땅이며 그 안에 내가 살고 있다. 그렇기에 높임말과, 예사말, 낮춤말이 있고 문자에는 초성 중성, 종성이 있다.
‘대~한민국 짝짝 짝짝짝’라는 구호에서 보듯 삼박자가 주선율이다. 그런데 영 단어에는 자음과 모음만 있고 한자어는 뜻과 발음이 유리되어 있다. 우리말을 영단어나 한자로 써 봐야 선율이 삼재에 맞지 않아 쉽게 이해가 되지 않는다.
하루 이틀의 문제가 아니라 지난 1세기 동안 거대한 표절의 시대를 지나면서 모두가 남의 것을 우선시하고 베끼는 타성이 체질화 되었기 때문이다. 일제 항쟁기를 지나며 뜻 모를 일본말을 한자어로 외우다가 광복이 되자 표기만 한글로 바꾸었다.
예를 들면 人事를 한글로 ‘인사’라 표기했다. 뜻으로는 ‘사람의 일’인데 왜 ‘예절’과 ‘사람 씀’ 이라는 두 가지 뜻으로 변했는지 그 이유를 알 수가 없다. 운율과 선율은 사라지고 한가지 음이 다른 뜻이 되더라도 구분 할 수가 없게 되었다. 말보다 글이 우선하는 살벌한 사회가 된 이유이다.
초등학교 학예회에 초대되어 갔다가 질문을 받았다. 손자와 할아버지가 산에 같이 갔다가 ‘불이 나는 걸’ 보고 뭐라고 했을까요? ‘산불 이야! 하고 소리쳤겠지. ‘아니에요 ‘산(山)타[火]! 할아버지’라 했대요. 운율도 예절도 논리도 없는 썰렁 개그였지만 우리의 영단어 실력은 이 정도를 넘지 못한다는 증거다.
지난 조선 왕조 500년간 우리는 한문을 숭상해 왔지만 세계 최고의 한글을 창조하고 동양 삼국에서 최상급의 예악(禮樂)일체의 문화를 꽃피웠다. 아리랑과 판소리 그리고 종묘 제례악과 문묘 제례악이 유네스코에 등재되었다. 무엇보다 지행 합일의 실천 가치를 최 우선가치로 삼았던 실천 선비도가 그 저변에 있었다.
글쓴이는 한 예악 강연에서 청중들에게 물었다. 한국인은 왜 악수를 하면서 고개를 숙이는가? 이중성과 평등성에 문제가 있는 것 아닌가? 답은 이렇다. 우리는 잔치를 할 때 하늘에 먼저 감사하고 땅에다 ‘고수례’를 행한 다음에야 비로서 먹고 마시며 춤추고 놀았다. 음주 가무와 예와 악이 곧 생활이요 질서였다.
예와 악이 사라지니 질서가 유지될 수가 없고 언어에서 외래적 운율에 맞추다 보니 썰렁 개그처럼 소통이 막혀 버린 것이다. 우리는 지난 시절 산업화, 민주화 그리고 정보화를 동시에 달성했다. 그러나 지난 7년간 우리의 소득은 2만불 수준에 머물러 제자리 걸음이다.
대통령은 정상화를 외치지만 아직은 도루묵 수준이다. 전통 예약 사상을 새롭게 되살려 도약을 해야 하는 벅찬 과제를 안고 있다.
진용옥 경희대 명예교수
로그인 후 이용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