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총기사고, 분노시대의 산물

외국 사례이거니, 영화이거니 하면서 무심코 넘겨 봐왔던 총기 사건이 연이어 발생했다. 지난달 25일 세종시에서 엽총 난사로 4명이 숨지더니 불과 이틀 후인 27일에는 화성에서 70대가 또다시 엽총을 난사해 앞날이 창창했던 40대 파출소장을 비롯해 4명의 목숨을 앗아갔다. 그런데 이 두 사건은 약속이나 한 듯, 각본이 짜여져 있듯이 너무도 흡사해 놀라움을 감추기 어렵다. 모두 범행전에 파출소에 맡겨뒀던 수렵용 엽총을 찾아 사용했고 범행은 거침없이 이루어졌으며 범인 역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범행동기도 애정 문제와 재산 문제에서 비롯됐다는 차이점은 있을지 몰라도 근본적으로는 분을 참지 못한 ‘욱’, 즉 분노가 그 원인으로 분석되고 있다. 동기에서부터 범행에 이르기까지 유사점이 너무도 많다.

이런 큰 사건을 보고도 왜 그랬을까? 혹은 꼭 그렇게 했어야 하나? 등의 물음은 어쩌면 우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왜냐하면 요즘 대한민국은 ‘분노의 시대’라는 자조적인 분석이 많기 때문이다. 20대는 취업의 분노, 30대는 주거의 분노, 40대는 교육의 분노, 50대는 노후의 분노를 갖고 있고 60대를 넘어서는 이를 지켜보는 분노와 더욱 초라해지는 자신에 대한 분노로 가득 차 있다. 그래서 인내력(참을성)이 사라지고 누군가 자극만 하면 폭발하는 즉흥적, 극단적 사고를 하는 경향이 매우 강하다.

단지 이번 사건은 총기를 난사해 세간의 주목을 더 받았을 뿐이다. 앞서 화가 난다는 이유로 불을 지르거나 흉기를 불특정 행인들에게 휘둘러 고귀한 목숨을 빼앗은 사건을 우리는 이미 보았다. 사회생활이나 가정생활을 영위하면서 애정이나 금전적 문제 등을 둘러싼 갈등이 왜 없겠는가? 문제는 이를 참아내지 못하고 해소하지 못하면서 분노폭발로 이어지는 사회 전반적인 분위기가 촉매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즉 분노에 차면 어제든 어떠한 방법으로든 다수의 목숨을 앗아가는 극단적 범행은 또다시 발생할 가능성이 매우 높은 것이다.

상황이 이럴진대 정부와 정치권이 내놓은 대책은 미봉책에 불과한 것 같아 씁쓸하다. 당정은 대책회의를 갖고 총기 안전 관리 강화를 위한 관련법을 4월 중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주요 내용은 총기류에 GPS를 부착하고 현행 개인 소지가 허용되는 소형 공기총(5.5mm)과 실탄(400발 이하) 소지를 금지한다는 것이다. 총기 소지 허가제도도 대폭 강화해 규제를 한번 어기면 영구히 소지를 금지하는 ‘원스트라이크 아웃제’도 도입키로 했다. 이쯤 되면 ‘총기 청정국’이라는 이미지는 훼손된 것이나 다름이 없다. 사후약방문(死後藥方文)이지만 그래도 없는 것보다는 낫다.

하지만 역시 여전히 아쉽고 부족함이 적지 않다. 개개인의 ‘욱하는 심정’이나 ‘분노’가 보이는 것이 아니고 진단도 쉽지 않은 만큼 제도적으로 규제하기는 사실상 불가능하다는데 공감을 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또 개인의 감정까지 정부나 국가가 나서 검증해야 할 의무도 없다. 다만 법이니 제도니하는 사회규범으로 과연 이 같은 분노에서 비롯되는 대형사건을 예방할 수 있는가는 곱씹어 보아야 할 대목이 아닌가 싶은 것이다.

과거에서부터 현재까지 사회를 이끌어 왔던 힘이 잘 짜여진 그리고 합리적인 규범과 공평한 부의 분배가 골격이었다면 앞으로(어쩌면 지금도) 더 중요한 요소는 다름 아닌 관심, 도덕, 협동심과 같은 국민 혹은 사회 구성원간의 ‘신뢰’라는데 이견이 없다. 이제 분노,감정, 본능 등 인간 심리에 의해 발생하는 대형사건의 예방을 사회적 규범이나 법 등 하드웨어적 제약에 맡기기보다 국민 개개인의 감성 인내력을 키우는 소프트웨어적 접근에서 찾는 방안을 고민해 보자.

정일형

지역사회부 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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