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률 플러스] 계약교섭 부당하게 파기 손해배상 청구할 수 있을까

복잡한 공사도급계약이나 물품공급계약을 체결할 때, 본 계약을 체결하기 전에 계약내용 등에 관하여 서로 협의하는 등 교섭과정을 거치는 경우가 있다.

또 공사계약을 체결하고 공사 중에 사정변경이 생겨 공사비를 증액하여야 할 때 그에 관하여 서로 논의하는 교섭을 할 경우도 있다.

이렇게 계약당사자 간에 정식계약을 체결하지는 않았지만, 계약교섭단계에서 본계약을 체결할 것처럼 행동하였고, 그 결과 쌍방이 본계약을 체결할 것으로 서로 신뢰하였으며, 당사자 일방이 이를 믿고 계약이행의 전부나 일부를 하였다.

그런데, 나중에 당사자 일방이 정당한 이유없이 본계약체결을 거부하였고, 이로 인하여 다른 당사자가 손해를 입게 되었다. 이러한 경우에 손해를 입은 당사자가 계약체결을 거부한 다른 당사자에게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는지가 문제된다.

판례(대법원 2004. 5. 28. 선고 2002다32301판결)는 다음의 사건에서 본계약체결을 거부한 당사자에게 손해배상책임을 인정하였다.

갑은 중공업 회사이고, 을은 국방에 필요한 병기, 장비 및 물자에 관한 기술적인 조사, 연구 및 시험 등을 목적으로 국방과학연구소법에 의하여 설립된 특수법인이다. 갑은 경쟁입찰을 거쳐 을이 발주한 풍동장비 설계, 제작 및 설치공사계약(‘본건 계약’이라 함)을 체결하였다.

갑은 본건 계약을 체결한 후 공사를 하던 중 외환위기로 환율이 공사계약당시 1달러 당 770원 가량에서 1800원 정도까지 인상됨에 따라 본건 공사에 필요한 수입 원자재 가격이 급등하였다. 이에 갑은 당초의 계약금액으로는 공사를 할 수 없어 을에게 계약금액의 증액을 요청하였다.

이에 대해 을은 갑에게 “증액대금(약 45억 원)을 예산에 반영되도록 하겠으니 본건 공사를 완료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라”라고 하였다. 그 후 을은 국방부와 기획예산처를 통하여 증액대금을 반영한 예산안을 제출하였는데, 국회에서 이를 삭감하였다. 이에 따라 을은 갑에게 증액대금을 지급하지 않기로 확정하였다.

이에 대해 위 판결은, “계약 당사자의 어느 일방(본건에서는 을)이 계약의 교섭단계에서 계약이 확실하게 체결되리라는 정당한 기대 내지 신뢰를 부여하여, 상대방(본건에서는 갑)이 그 신뢰에 따라 행동하였음에도 상당한 이유없이 계약의 체결을 거부하여 손해를 입혔다면, 이는 신의성실의 원칙에 비추어 볼 때 계약자유원칙의 한계를 넘는 위법행위로서 불법행위를 구성한다. 따라서 을은 갑에게 증액대금 상당액을 손해배상금으로 지급하여야 한다”고 판결하였다

원칙적으로 당사자 간에 정식으로 계약이 체결되지 아니하면 계약상의 효력이 발생하지 않는다. 본건에서도 갑과 을 사이에 증액대금에 관하여 계약교섭은 하였지만 아직 정식으로 변경계약을 체결한 것은 아니다. 따라서 을은 갑에게 계약상으로는 증액대금을 지급할 의무가 없다.

그러나 위 사안에서 보는 바와 같이, 갑과 을 사이에 계약교섭은 하였지만 변경계약서 자체는 아직 체결되지 않은 경우에도, 쌍방이 계약교섭을 하면서 본계약을 체결할 것처럼 행동한 경우에는, 변경계약이 체결될 것으로 믿은 상대방(본건에서 갑)에게 신의성실의 원칙에 따른 신뢰를 위반한 불법행위를 한 것으로 인정되므로, 다른 당사자(본건에서 을)가 그 손해를 배상하여야 할 책임이 있는 것으로 인정되는 것이다.

이재철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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