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오면 맛난 것 사주겠다던 효자아들, 아버지는 아직도 기다려 세월호 일반인 희생자 24명 ‘임시’ 글자아래 편히 쉬지도 못해…
“우리 광진이는 어디 가서 이제까지 안 오냐.”
16일 오전 11시께 인천가족공원 만월당 세월호 사고 일반인 희생자 임시 봉안당. 이정상씨(74)는 아들의 영정 앞에 앉아 가쁜 숨을 몰아쉬며 아들의 이름을 목놓아 외쳤다.
정확히 1년 전 제주도를 배 타고 다녀와 맛있는 저녁식사를 사겠다던 외아들 이광진씨(당시 40)는 세월호 참사로 돌아올 수 없는 먼 길을 떠났다.
참사를 당하기 전 오랜 고생 끝에 정규직이 돼 온 가족에 기쁨을 안겼던 이광진씨는 결혼까지 미루고 아버지의 간병을 돕던 효자였다. 그러한 효자이자 외아들인 이광진씨가 하늘나라로 간지 1년이 됐다.
알츠하이머병을 앓아 때때로 아들의 부재를 알지 못하는 아버지는 사고의 충격 때문인지 지난해 11월 담관암까지 더해져 이제는 서 있는 것조차 쉽지 않다. 결국, 아버지 이씨는 1m 정도 높이에 붙어 있는 아들의 영정 사진을 30분 넘게 쪼그려 앉아 쳐다보다 다른 유가족의 도움을 받아 의자로 몸을 옮겼다.
이곳 임시 봉안당에는 일반인 희생자 24명의 영정 사진과 위패, 그리고 17명의 납골함이 모셔져 있다. 세월호 참사 1주기를 맞아 사랑하는 이를 보러 온 유가족의 얼굴엔 누구보다 힘든 1년을 보낸 듯 여전히 고통과 슬픔이 자리 잡고 있다.
특히 선장을 대신해 다른 승객과 승무원을 탈출시키고자 마지막까지 의무를 다하다 숨진 故 양대홍 사무장(당시 45)의 납골함에는 지인이 붙인 것으로 보이는 편지 한 통이 놓여 있었다.
이 편지에는 ‘승객들에게 항상 희망의 메시지를 전달해주던 형, 이제 아파하지도 슬퍼하지도 말아야지 하면서도 마음대로 안 되네, 이제 나 이곳에 안 올 거야 안녕’ 등의 문구가 읽는 이의 가슴을 울렸다. 이같은 편지 내용이 알려지자 다른 유가족도 잇달아 찾아와 편지를 읽다 눈물을 흘렸다.
임시 봉안당을 찾은 유가족 한성식씨는 “1년이라는 세월이 지났는데도 일반인 희생자는 이곳에 ‘임시’라는 글자 아래 편히 쉬지도 못한다”며 “부디 이 모든 슬픔과 고통이 치유되고 마무리돼 유가족이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길 바란다”고 말했다.
인천지역 곳곳에서도 세월호 희생자를 추모하는 행사가 열려 슬픔을 함께 나눴다. 이날 오후 2시 중구 연안부두 해양광장에서 세월호 일반인 희생자 유가족 대책위원회 주관으로 ‘세월호 일반인 희생자 추모식’이 거행됐다.
추모식에는 유가족 50여 명, 유정복 인천시장, 유일호 국토교통부 장관 등 400여 명이 참석했으며 헌화 및 분향 때는 유가족뿐만 아니라 함께한 시민도 눈시울을 붉혔다.
유 시장은 추모사에서 “사랑하는 가족을 차갑고 황량한 먼 세상으로 보낸 것에 대해 죄송하다”며 “모두 함께 비정상을 정상으로 바로 잡으려는 노력만이 안전사고를 예방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한편, 인하대학교 교수회와 총학생회는 이날 오후 1시 통일광장에서 교수와 학생 2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추모사 및 추모연주 등을 하며 엄숙한 분위기 속에서 추모행사를 했다.
천주교 인천교구도 이날 오전 10시 ‘세월호 참사 1주기 추모 미사’를 답동성당에서 봉헌, 최기산 인천교구장이 사회적 약자에 대한 형제적 책임감을 강조한 프란치스코 교황의 메시지를 전달했다.
박용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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