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시론] 소탐대실(小貪大失)

전국시대 진(秦)나라 혜왕(惠王)이 촉(蜀)나라를 공격하기 위해 소를 조각하게 해 그 속에 황금과 비단을 채워 넣고 ‘쇠똥의 금’이라 칭한 후 촉후에 대한 우호의 예물을 보낸다고 소문을 퍼뜨렸다. 욕심이 많은 촉후(蜀侯)는 신하들의 간언을 듣지 않고 진의 사신이 올린 헌상품의 목록에 눈이 어두워져 백성들을 징발하여 보석으로 만든 소를 맞을 길을 만들었다.

혜왕은 보석 소와 함께 장병 수만 명을 촉나라로 보냈는데 촉후는 문무백관을 거느리고 도성의 교외까지 몸소 나와서 이를 맞이했으나 진나라 병사들은 숨겨 두었던 무기를 꺼내 촉을 공격하는 바람에 그만 사로잡히고 말았다. 이로써 촉나라는 망하고 보석의 소는 촉의 치욕의 상징으로 남았다. 촉후의 소탐대실이 결국 나라를 잃게 만든 것이다.

일상생활에서 우리는 작은 이익에 집착하다 더 크고 중요한 것을 놓치는 일을 종종 겪게 된다. 하물며 개인의 경우도 이런 일을 겪게 되면 후회하고 부끄러워하는 것이 인지상정인데 사회적, 국가적인 일에 있어서는 얼마나 큰 혼란과 어려움을 초래할지는 불을 보듯 뻔한 일이다.

그 뻔한 일이 우리 눈앞에 펼쳐지고 말았다. 지난 연말 전국을 떠들썩하게 만든 ‘연말정산’의 후유증이 결국은 잘 자라나던 기부문화의 싹을 말라버리게 한 것이다.

최근 언론에서는 ‘지난해 직장인 기부금이 전년대비 5천억 원 이상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으며 이는 2013년 세법개정으로 지난해부터 기부금 소득공제가 세액공제로 전환된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연도별로 살펴보면 직장인의 기부는 지난 2009년 4조6400억원에서 2013년 5조5800억원으로 가파르게 늘어났으나 개정된 세법이 처음 적용된 지난해 잠정치는 5조800억원으로 약5천억원이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정부 관계자는 ‘기부금 감소를 세액공제의 여파로만 단정 지을 수 없으며 경기침체 등 다양한 요인을 고려해야 할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으나 대부분의 전문가는 ‘세액공제의 영향이 매우 결정적’인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십여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보자. 당시 공동모금회를 비롯한 법정 기부단체의 기부금 소득공제는 소득금액의 100%였다. 이는 모든 소득을 다 기부하더라고 전액 다 소득공제를 받을 수 있다는 뜻이다. 현실적으로는 이루어질 수 없는 일이지만 당시 기부문화의 싹을 키우고 뿌리를 내리는데 ‘상징적’인 효과를 가지고 있었다.

이에 대해 국세청 등 관련 기관에서는 ‘전 세계적으로 사상 유례가 없는 기부금 공제제도’라고 하며 이를 절반으로 줄이도록 관련 법을 개정했다. 당시 공동모금회 등에서는 ‘기부금 전액 소득공제는 기부문화 활성화를 위한 심리적 효과가 매우 크기 때문에 이를 굳이 절반으로 축소할 필요가 없다’고 관련 법 개정에 반대했으나 정부는 그대로 밀어붙였던 것이다.

사실상 내용적으로는 아무런 변화가 없음에도 법 개정 이후 많은 사람들이 ‘기부금 소득공제가 절반으로 줄어든 것이냐?’하는 문의가 빗발쳤던 기억이 새삼 떠오른다.

지난해 개인 기부금 감소와 관련해 학자들은 우리의 경우 ‘세금공제율 변화에 따른 기부행위 변화를 나타내는 ‘기부가격 탄력성’이 7~8%나 되는 것으로 나타나 미국 등 선진국의 1%에 비해 매우 높다‘고 지적하고 있어 이번 연말정산 파동은 풀뿌리 기부의 주역이라고 할 수 있는 중위소득의 직장인과 중산층의 기부 철회로 나타나 앞으로도 그 후유증이 더 커질 전망이다.

이번 기부금 세액공제 파동으로 정부가 더 거둬들인 세수는 3천억 원 정도라고 한다. 그러나 이로 인한 기부금은 2조 원 이상 줄어들 것이라는 것이 재정학회 등의 보고서 내용이다.

줄어든 사회적 총자산도 문제지만 이로 인해 위축된 기부문화, 나눔의 문화를 어떻게 되살릴 것인지를 생각해 보면 이야말로 소탐대실의 전형적인 모습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뒤늦은 감이 있지만, 정치권에서도 이번 사태가 심상치 않다고 파악하고 관련법 개정에 나설 전망이다. 부디 눈앞의 작은 이익에 취해 더 큰 미래를 망치는 잘못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기를 바란다.

전흥윤 인천사회복지공동모금회 사무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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