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셋값이 하늘 높은 줄 모르고 고공행진을 거듭하고 있다. 이로 인해 2년 단위로 치러지는 임대차 재계약 시 수천만원 인상 요구는 물론 억 단위 인상도 다반사가 됐다. 전세시장 불안으로 애꿎은 임차인만 보증금 인상을 강요당하는 실정이다.
주택임대차 보증금의 안전성 여부를 고려할 여지도 없이 말이다. 보증금의 안전성이라는 것은 결국 임차주택이 경매당할 위기에 처했을 때 과연 임차인이 자신의 보증금 전액을 찾을 수 있는가 하는 것이지만 불행히도 경매 당하는 주택의 임차인이 보증금 전액 또는 일부를 잃게 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대개 임대차계약을 체결하기 전 해당 주택의 등기부등본을 발급받아 임차인이 잔금을 치르고 대항력을 갖추기 전의 선순위 근저당채권이 얼마 설정돼 있는지를 확인하는 것은 기본이다. 만약 임차하려는 주택에 근저당이든 뭐든 설정돼 있는 권리가 아무것도 없으면 별 문제 없이 임대차계약을 체결하면 된다.
그렇지 않고 그 채권액이 얼마이든 선순위 근저당이 설정돼 있다면? 이때는 근저당 채권액과 유사시, 즉 경매 처분 시 예상낙찰가율을 따져서 전세보증금을 감액하는 지혜를 발휘해야 할 것이다.
예컨대, 주택가액이 5억원이고 선순위 근저당이 3억원 설정돼 있는 이 아파트 전셋값이 3억원이라 할 때 보증금 3억원의 전세계약을 체결하는 것이 옳은 일일까? 결론부터 말하면 큰일날 일이다.
이 아파트가 경매 처분되면 2013년 전국 아파트 평균 낙찰가율 80%를 고려할 때 4억원 정도에 낙찰이 될 것이고, 선순위 근저당 채권액 3억원 우선 변제 후 남는 금액은 1억원. 임차인은 전세보증금 3억원 중 1억원만 변제받고 나머지 2억원은 잃게 되는 사태가 발생한다.
모든 예상 가능한 상황을 참작한 계약이라면 비록 전셋값이 3억원이라 해도 1억원의 전세계약을 체결하는 것이 맞지만 전셋집 찾기도 어려운 판에 임차인 요구대로 계약을 체결해줄 건물주가 과연 몇이나 될까? 전셋집은 부족하고 전셋값은 자꾸 오르고 약자인 임차인은 별 대안도 없이 위험천만한 계약을 체결할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이렇듯 계약을 체결할 때 만약의 사태를 대비해 전세보증금이 적정한 지를 판단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전세 재계약 시 집주인의 전셋값 인상 요구에도 신중을 기할 필요가 있다. 집주인의 요구를 그대로 받아줬다가는 낭패를 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실례를 들어보자. 송파구 가락동 소재 K아파트 149.74㎡(45.3평, 53평형)이 경매에 부쳐진 적이 있다. 최초감정가 7억7천만원에 1회차 경매가 진행됐으나 유찰된 후 2회차 경매에서도 또다시 유찰돼 감정가의 64%인 4억9천280만원까지 가격이 떨어졌다.
임차인 K씨는 보증금 2억원에 이 아파트 전세계약을 체결하고 2010년 2월에 입주를 마무리했다. 그런데 K씨가 입주하기 전에 이미 이 아파트를 담보로 선순위 근저당이 5억1천700만원(원금채권 4억1천만원 추정, 이자 정상적 납부) 설정돼있는 상태.
K씨에게도 올 것이 왔다. 2년이 임대차계약이 종료되기 전 집주인으로부터 보증금을 무려 7천만원이나 올려달라는 통보를 받은 것. 별 수 없겠다 생각하고 아무 생각 없이 2012년 2월에 재계약을 했다.
재계약 후 2년이 지날 무렵에 집주인은 또다시 4천만원의 전세보증금 인상을 요구했다. 당초 2억원에 계약했던 전세 보증금이 3억1천만원으로 불어난 것이다.
이렇게 아무 생각 없이 집주인 요구대로 전셋값을 올려줬는데 경매라니! 그것도 한차례 유찰된 것도 아니고 두 차례 유찰돼 최저가가 4억9천280만원으로 떨어졌다니! 종전 최저가 수준인 6억원에 낙찰이 된다손 치더라도 선순위 근저당 채권액을 우선 변제하고 나면 1억9천만원만 K씨 손에 쥐어질 판이다. 2차례 인상해준 1억1천만원은 전액 잃게 생겼다.
이는 내가 살고 있는 집의 담보상태가 어떤 상황인지 살펴보지 않고 무턱대고 보증금을 인상해준 대가를 톡톡히 치를 수 있는 대표적인 사례라 볼 수 있다.
임대차계약을 체결할 때이든 재계약을 해야 할 때이든 임차가옥의 담보상태를 꼼꼼히 살펴보고 만약 담보대출액이 한도껏 설정돼 있다면 유사시를 대비해 보증금 감액을 청구하거나 보증금 인상을 단호히 거부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임차인이 살 수 있는 법이다.
이영진 이웰에셋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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