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 있는 아침] 만수저수지

물가에 오남매를 놓아두고

엄마는 자꾸 가슴에 열이 난다고 하였다

달빛 가득 끌어 들이는 저수지 밤 물속에서

가끔씩 붉은 꽃대가 올라오곤 하였다

엄마는 저수지에 아이들을 데리고 나가

몇 번이나 신발을 벗어 놓고 수면 위를 걷다가 되돌아섰다

검은 물체가 후다닥 사라지는 어둠 저 너머로

물결이 일으키는 작은 파문만이 밤의 정적을 깨트렸다

아버지가 땅, 집문서를 하마 입으로 삼켜버린 뒤로

오남매는 저수지가에서 들꽃무더기 같이 자랐다

빚진 이웃들 가시덩굴이 엄마를 찔러서

때로는 저수지가 피로 흘러 넘쳤다

엄마 홀로 지키던 그 물가의 꽃대

어느 세월에 활짝 피워낸 오남매

물살이 상처 보듬어 주던 만수저수지에

오늘은 꽃물결이 일고 있다

김영자

경기 안성 출생, <문학공간> 으로 등단, 시집 『문은 조금 열려 있다』『아름다움과 화해를 하다』『푸른 잎에 상처를 내다』, 한국문인협회 회원, 한국경기시인협회 이사, 경기도 문학상 시 부문 본상 수상 (200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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