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경제] 농산물 가격 좀 더 들여다보자

극심한 가뭄에 이어 태풍까지 지나가면서 제주를 비롯해 남부지방 피해가 심했고 복구에 땀방울을 흘리고 있다. 제주도는 물폭탄으로 백록담이 만수위에 이르렀고 사상자도 있었으며, 과일과 채소 등 농가 피해는 125ha를 넘어섰다.

이제 시작된 장마에 태풍도 더 올 것으로 예상되지만 한해와 냉해, 태풍과 폭우 등 자연재해는 인간의 능력으로 다스리는 데 한계가 있다.

덩달아 움직이는 농산물 가격에 매스컴에서는 시장 보기가 무섭다고 하지만 가뭄, 중동호흡기증후군(MERS) 등 현안은 농산물 소비도 위축시켰다. 농산물 가격을 보는 시선, 이제는 달라져야 할 때다.

먼저 농산물의 특성에 대한 이해가 선행되어야 한다. 농산물은 기본적으로 수확 후에도 숨을 쉬는 생물이다. 따라서 신선도를 유지하여 식탁에까지 올라가는 콜드체인(저장유통) 기술이 중요하고 비용도 수반된다.

또한 가격 대비 부피가 크며 유통과정에서 부패하기 쉬워 감모로 인한 손실비용도 크다. 공장에서 배송되는 공산품과 달리 생산자와 소비자가 전국적으로 산재해 있는 점도 유통비용 요인이다. 이렇게 소비자 가격에서 유통비용이 차지하는 비율은 무, 배추 등 채소류는 무려 70%, 과일류는 50%, 축산물은 40%대이다. 쌀, 감자 등은 상대적으로 저장성이 있어 20~30%대이다.

가장 큰 리스크 요인은 인간으로선 통제에 한계가 있는 기상 상황이다. 따라서 농산물 생산과 유통에서 목돈을 만지기가 쉽지 않다. 이런 악순환의 고리를 끊기 위해 당국은 2016년까지 도매시장 유통비율을 40%로 낮추고 생산자단체 계열화를 통해 도매는 36%, 소매는 20%까지 올리기로 했다.

또한 직거래는 4% 수준에서 10%로 크게 확대키로 했다. 계획대로 진행될 경우 채소, 과일 등은 비용 절감으로 소비자 가격이 10% 정도 줄어들고 생산자는 5% 이상의 수취가 인상이 예상된다.

농산물의 생산과정을 들여다보면 가격 수준에 대한 생각이 달라진다. 노지와 시설, 품종에 따라 생육기간과 재배방법이 달라 농사도 이제는 머리와 몸을 다 써야 한다.

귀농해도 성공 농업이 쉽지 않은 이유이기도 하다. 생육기간을 봐도 배추와 무는 3개월, 고추는 4개월, 마늘은 8개월, 양파는 무려 10개월이 걸린다. 객토작업과 이랑 만들기, 비료주기, 작물보호제 투여, 피복과 봉지 씌우기, 꽃가루 수분, 잡초제거, 지지대 세우기, 수확 후 저장, 일부 가공까지 농사일은 일 년 내내 계속되어 이마에 땀방울 없이는 수확을 기대하기 어렵다.

풍성한 수확은 하늘이 협조했을 때에나 가능한 일이지만 풍년이 들면 홍수출하로 농업인은 또 한 번 시름에 잠긴다. 작년에는 풍년 농사로 농산물 가격이 폭락했고 금년에는 기상 악화로 작년 대비 상승했으나 평년치로 보면 오히려 내렸는데 이를 두고 폭등이라는 언급은 옳지 않다. 이제는 원가에 대한 논의가 있어야 한다.

농업에서 FTA가 무서운 건 입맛을 빼앗아 가기 때문이다. 개방이 확대되면서 소비자는 사시사철 농산물을 골라 먹을 수 있게 되었지만, 반면 서서히 우리 농산물은 자리를 잃어가는 것이다. 누구나 일하면 보람을 얻으려 하고 금전적 대가는 이를 객관화해준다. 우리 농업인 농업소득이 연간 1천만원 수준인데 먹을거리 담당자로서 사명감을 부여하기엔 설득력이 떨어진다.

이제는 적어도 원가 이상을 보장하는 방안에 머리를 맞대야 한다. 일부 지자체에서 농업인 월급제를 도입하고, 보험대상을 확대하고 지지하는 방법도 그 일환이다.

농산물도 개방엔 예외 없고 이제 애국심에만 기댈 수도 없다. 우리 몸은 먹는 대로 반응하기 때문에 소비자는 내 몸에 맞는 먹을거리를 가릴 줄 알아야 한다. 친환경 농산물에 제값을 지불할 수 있어야 하고, 제철 음식이 왜 좋은지 알아야 한다. 국민소득 3만달러를 내다보는 국민의 수준에 맞는 소비 자세가 필요하다.

명정식 농협안성교육원 교수

© 경기일보(www.kyeonggi.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댓글 댓글 운영규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