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해의 보물섬 ‘덕적도’
인천 사람들은 바다를 가깝게 느끼지 않는다. 월미도나 연안부두에 나가봐야 ‘인천 앞바다에 사이다가 떠도…’ 어쩌고 하는 오래된 우스갯소리만 떠올린다.
인천 사람들도 바다를 보러 정동진이나 제주도에 간다. 그래서 인천에는 푸른 바다, 넘실거리는 하얀 파도, 금빛 모래사장 같은건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다. 하지만 인천의 바다는 섬에 숨어 있다.
CNN의 아시아문화정보매체인 ‘CNNGO(www.cnngo.com)'가 몇 해 전 ‘대한민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섬 33’을 뽑은 명단을 살펴보면 상위권에 인천의 섬이 여럿 올라 있다.
인천의 대표적인 섬 덕적도가 6위에 올랐다. 덕적도의 우리말 지명은 ‘큰물섬’이라고 한다. ‘깊고 큰 바다에 위치한 섬’이라는 의미다. 서포리나 밧지름 해변 등은 아름답고 고즈넉하기로 유명하다.
■ 덕을 쌓은 섬, ‘덕적’
덕적도는 한자로 덕 덕(德)에 쌓을 적(積)을 쓴다. 우리말 이름인 ‘큰물섬’을 한자로 바꾼 것이라는 데 얼마나 풍광이 아름답고 천혜자원이 풍부했기에 ‘덕을 쌓은 섬’이라는 이름을 얻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덕적도에는 당나라 소정방이 국수봉 정상에서 제사를 지냈다는 제천당이 있었다고 하는데 흔적은 남아 있지 않다.
소정방이 신라의 요청으로 백제를 침략했을 때 군사를 주둔했던 곳이다. 대신 덕적 이웃 섬인 소야도 북악산 기슭 소의마을에는 소정방이 진을 쳤다는 ‘담안’이라는 유적이 남아 있다. 그 후로도 덕적도는 한국전쟁 당시 인천상륙작전의 전진기지로 활용될 정도로 전략적 요충지역할을 했다.
‘택리지’에는 덕적을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세 개의 돌 봉우리가 하늘을 꿰뚫은 듯하고, 산기슭이 빙 둘러싸 항구를 이루고, 층층이 쌓인 바위와 반석이 굽이굽이 돌아 맑고 기이한 모양새를 하고 있다. 덕적의 주민들은 모두 고기를 잡고 해초를 뜯어 부자가 된 사람이 많다. 여러 섬에 나쁜 기운이 있는 샘이 많은데 덕적에는 없다.’
덕적도에는 신석기 시대부터 사람이 살기 시작했다고 한다. 삼국시대에는 백제에 속했다가 고구려와 신라가 한강유역을 점령하면서 소속이 바뀌었다. 고려 현종 9년(1018년)에 수원의 속군으로 삼았다가 뒤에 인주, 남양부 등을 거쳐 조선 성종 17년(1486년) 인천도호부에 이속됐다. 1973년 옹진군에 편입됐으며 1995년 3월 1일 인천시로 통합됐다.
■ 바람이 머무는 곳, ‘서포리’
‘서포리 해변’은 덕적을 가장 아름답게 즐길 수 있는 곳이다. 특히 해가 조금씩 기울기 시작하는 오후 4~5시부터는 햇빛에 반짝이는 바다가 매우 매력적이다. ‘인천의 바다가 이렇게 아름다울 수도 있구나’라는 생각에 감탄이 절로 나온다.
덕적도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서포리해변이다. 서포리는 경사가 완만한 2㎞ 길이의 넓은 백사장, 유럽 어느 해변 부럽지 않은 곱고 깨끗한 하얀 모래밭, 100년을 훌쩍 넘긴 소나무 1천 그루가 어우러진 해송 숲 등 천혜의 휴양지다. 해송 숲 나무그늘에 해먹이라도 걸어두고 불어오는 바람을 맞으면서 낮잠을 잔다면 그만한 피서가 없을 듯싶다.
얽히고설킨 모양새가 독특한 서포리 소나무를 배경 삼아 사진을 찍으면 값비싼 DSLR이 아니더라도 여느 사진작가 부럽지 않은 작품활동도 할 수 있다. 주변의 갯바위에서는 우럭과 놀래미 낚시를 할 수 있다.
해변 외에도 오토캠핑장, 웰빙산림욕장, 산내음산책로, 자전거 투어 등 다양한 즐길 거리가 마련돼 있다. 덕적 자전거 코스는 동호회 사이에서도 손꼽히는 코스다. 일반인 코스, 중급 코스, MTB 코스, 해변 경관 코스 등 다양하다.
일반인 코스는 밧지름해수욕장~ 서포리해수욕장 등 길이 12㎞, 1시간 30분가량 된다. 중급 코스는 북리항~북리등대~능동자갈마당 등 7㎞ 구간이다. 평균 경사가 12° 정도 되기 때문에 어느 정도 라이딩 실력이 뒷받침돼야 한다. MTB 코스는 도우선착장~이개해변까지 비포장도로를 달리는 코스로 3.2㎞, 30여 분이 걸린다.
■ 부드럽거나 거칠거나, ‘능동자갈마당’
덕적군도의 바다는 온화하다. 태풍이 부는 날에는 가끔 성을 내기도 하지만, 날씨가 조금 궂은 것쯤은 참고 넘어가 준다. 덕적의 바다가 모질지 않다는 것을 가장 잘 느낄 수 있는 곳이 능동자갈마당이다.
사실 자갈마당에 들어서면 이름만 자갈이지 바위 같은 돌덩이들이 널려 있다. 동글동글 자그마한 백령의 몽돌과는 느낌이 많이 다르다. 바윗덩이 같은 자갈들을 밟고 해변까지 나가기도 쉽지가 않다.
조심조심 한 걸음 한 걸음 내딛어야 한다. 돌이 왜 이리 거칠까 생각해보면 바다가 거칠지 않기 때문이지 싶다. 돌을 이리저리 굴리고 깎아내야 동글동글해질 텐데 그렇지 못하니 돌이 저마다 성질을 고스란히 드러내는 것이다.
그래서일까, 능동자갈마당은 ‘익사이팅(exciting)’하다. 마당 한쪽에는 고기를 잡으러 나간 남편을 기다리는 아이를 등에 업은 모녀 바위가 눈길을 사로잡는다. 안개가 슬며시 해변으로 내려오거나 석양이 질 무렵이면 더 애닮은 느낌을 준다.
능동자갈마당의 하이라이트는 해넘이다. 낙조로 유명한 서해안 중에서도 으뜸으로 꼽아도 손색없다. 당일치기로 덕적에 간다면 오후 4시 반 출발하는 배편이 막 배이기 때문에 해넘이를 볼 수 없다. 하룻밤 정도 덕적에 머물러야만 볼 수 있는 풍경이다.
덕적도 파수꾼 임종갑씨
“뭍에서 건너온지 8년… 어느새 섬 사나이 다 됐어요”
■ ‘섬은 내 운명’, 덕적 지킴이 임종갑씨
섬은 태생적으로 배타적이다. 많은 사람이 들고 나지만 정착하기 어려운 곳이 섬이다. 뜨내기들이 많으니 섬사람들은 쉽게 정을 주지 않는다. 믿음을 얻기란 더욱 어렵다.
하지만 덕적 지킴이로 통하는 임종갑씨(52)는 덕적 태생도 아니고 덕적 토박이도 아니다. 뭍에서 나고 자랐지만, 덕적이 좋아 8년 전 덕적에 터를 잡았다. 어찌 보면 8년이 길다고 할 수도 있지만, 강산이 한 번 변하기에는 조금 모자란 시간이다. 그래도 덕적에서는 임종갑씨를 덕적 지킴이라고 부르는 것에 아무도 토를 달지 않는다.
임종갑씨는 ‘섬 이야기’라는 민박집을 운영하고 있다. 전래동화에 나오는 혹부리영감처럼 이야기보따리를 품고 있는 것 같다. 섬을 찾아온 손님들에게 봉고차로 섬 구석구석을 안내해주면서 쉴 새 없이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비록 돈을 받고 하는 관광 도우미 일이지만 돈이라고 해야 기름 값 정도일 뿐 덕적을 소개하고 덕적의 이야기를 하는 게 좋아 시작한 일이다.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민어나 조기가 한창 잡히던 시절, 육지에서도 구경하기 어렵던 극장이나 다방이 들어설 정도로 모자라는 것 없이 풍족했던 덕적의 옛 이야기를 들려주기도 하고, 사람들이 섬을 떠나면서 논밭이 갈대밭으로 변해버린 아쉬운 이야기도 숨기지 않는다.
풍력발전기나 태양광발전기가 들어서 ‘에코 아일랜드’로 변신하고 있는 덕적의 오늘을 홍보하기도 하고 굴업도와 소야도 등 덕적 인근의 섬까지 줄줄이 꿰고 있다. 어떻게 해야 섬이 조금 더 나아질 수 있을지 섬의 내일까지 고민한다.
관광객이 뜸해지는 가을부터 다음해 봄까지는 섬의 안전을 살피는 지킴이로 섬을 누비고 다닌다. 산이나 들로 산불경계를 서기도 하고, 환경이 훼손되지 않도록 감시자가 되기도 한다.
임종갑씨는 “덕적에서 나고 자란 어르신들에게 옛 이야기를 듣고 머릿속에 담아두거나 덕적에 관한 책을 찾아보면서 공부를 했다”며 “덕적을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하나라도 더 덕적의 좋은 추억을 심어주고 싶다”고 전했다.
임종갑씨의 덕적 사랑은 유난하다. 학창시절 덕적도 출신 친구들을 만나 덕적을 알게 되고 매력에 푹 빠진 임종갑씨는 자주 오가는 것으로는 만족할 수 없어 결국 덕적 주민이 되기로 마음먹었다고 한다.
사실 덕적에 짐 싸서 들어오자고 부인과 의논했을 당시, 부인은 술과 담배를 즐기는 임종갑씨에 두 가지 모두 끊을 것을 조건으로 내걸었다. 섬 특성상 할 일이 많지 않으니 남편이 비와도 술, 사람이 뜸해도 술, 늘 술을 가까이하지 않을까 걱정됐던 것이다. 임종갑씨는 모두 끊으마 약속했고 8년 동안 약속을 지켰다. 대단한 덕적사랑이 아닐 수 없다.
임종갑씨는 “덕적은 가깝지만 가깝지 않은 섬이다. 인천에서 배로 1시간이면 올 수 있는 곳이지만 막상 한 번 오려면 쉽지 않다. 도시에서 멀어진 만큼 불편하기도 하지만 마음의 여유를 찾을 수 있는 곳이다”며 “산과 바다, 깨끗하고 아름다운 자연을 간직하고 있다는 것도 큰 매력”이라고 설명했다.
늘 태양과 가까이 사는 듯 그을린 피부와 호탕한 웃음, 자신감 넘치는 걸음걸이의 임종갑씨는 덕적이 참 잘 어울리는 섬 사나이다.
김미경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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