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시론] 강대국 사이에서 ‘강한나라’ 되기

춘추 오패(五覇)는 춘추전국시대 국제 관계를 주도했던 5대 강대국으로, 제(齊)·진(晉)·초(楚)·오(吳)·월(越)을 말한다. 이 다섯 강대국은 동주(東周) 이후 500여 년간 번갈아 가면서 이름뿐인 주(周)나라 중심의 국제정치 질서를 주도했다. 이들은 당대의 수많은 국가 사이의 갈등과 긴장 및 지역 분쟁을 해결하면서 천하 질서를 이끌어 나간 중심 국가이다.

약육강식의 시대에 이 다섯 강국만 있었던 게 아니다. 춘추전국시대의 많은 나라 가운데 비록 나라는 작지만, 대국들 사이에서 자신의 국가적 입장과 이해관계를 강대국 상대로 당당하게 주장하면서 이들 강대국이 쉽게 넘보지 못하게 하였으며, 더 나아가 열강들 사이에서 자신의 정치적 지위를 공고하게 했던 나라가 정(鄭)나라이다.

진(晉)나라와 초(楚)나라가 중원의 패권을 놓고 다툴 때, 이 두 강대국 사이에 끼어 있던 정나라는 이들로부터 많은 침략을 받아 고초를 겪었으며, 내부적으로는 정쟁의 소용돌이가 끊이지 않았던 멸망 직전의 그저 그런 나라였다. 이런 정나라에 공자가 활동하던 시기 정자산(鄭子産)이 재상으로 부임했다.

그는 먼저 혼란한 국내 정치를 개혁하고, 두 강대국과의 자주적이고 합리적인 자세로 의연한 외교 교섭을 전개하는 등 국제 정치 무대에서 강대국에 당당하게 맞서 나갔다. 춘추시대 개혁 정치의 물길을 열었고, 정치 관료의 모범을 보인 정자산은 일생 자신의 생활에는 겸손함과 장중함으로, 윗사람을 섬길 때에는 존경과 엄숙함으로, 백성에 대해서는 사랑과 은혜를 중심으로 하는 자세를 끝까지 견지했다.

정자산의 지도력은 지도자로서의 솔선수범과 엄격함, 합리적이고 냉정한 정세 분석에서 나왔으며, 국가의 경쟁력을 좀먹는 부조리한 제도의 개혁을 통해 그 결실을 보게 됐다.

우리는 정자산의 지도력을 통해 한 사람의 훌륭한 지도력이 국제 사회에서 그 나라의 브랜드 가치를 오랫동안 높일 수 있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다.

올해는 우리가 일본 제국주의 식민지배에서 해방된 지 70주년이 되는 시점이다. 정부와 시민단체들은 해방 70년을 기념해 광복과 분단, 한국전쟁 이후 한국사회의 변화와 발전을 주제로 해방 이후 70년 동안의 한국사회 발전과 미래사회를 위한 비전 및 개혁의 방향을 다양한 기획을 통해 제시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식민지배와 전쟁의 폐허에서도 경제규모가 세계 10위권으로 성장했고, 정치적 민주화 및 민주적 삶의 원칙들이 다양한 역사적 갈등과 긴장을 해결해 나가면서 지속적으로 성숙하고 있으며, 교육과 문화적 힘에서 아시아나 아프리카의 여러 나라로부터 선망의 대상이 됐다. 해방 70년의 성과를 종합한다면, 한국은 19~20세기 제국주의의 악랄한 식민 지배를 겪었던 나라로서 20세기 후반 국제사회에서 후발 선진국의 본보기가 되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우리 주변을 둘러싼 정치적 환경은 지금으로부터 105년 전인 1910년(경술년) 8월 대한제국이 일본 제국주의자에 의해 국권을 상실하게 될 당시의 국제적 정치 환경과 너무나 흡사하다.

오늘날 세계에서 우리나라만큼 국제적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충돌하는 초강대국을 이웃으로 둔 나라는 없다. 일본과 중국, 미국과 러시아와 당당하게 교류하고, 우리의 정치적 위상을 공고히 하며, 이들과 함께 국제 질서를 주도할 수 있는 비전과 지도력이 우리의 정치 지도자들에게 더욱더 절실하게 요구된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춘추시대의 정자산 같은 지도자는 과연 있는 것일까?

고대혁

경인교대 윤리교육과 교수

© 경기일보(www.kyeonggi.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댓글 댓글 운영규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