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혁신처가 앞으로 100만원 이상의 금품이나 향응을 제공받은 공무원을 무조건 퇴출하는 공무원 징계령 시행규칙을 개정한다. 9월 말 공무원 징계령 시행규칙을 입법예고 하고 이르면 10월 말 국무회의에서 최종 의결해 시행에 들어갈 계획이다.
금액별 징계양정을 제도화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공무원이 직무와 관련해 100만원이 넘는 금품이나 향응을 받으면 무조건 파면이나 해임, 100만원 미만이라 하더라도 능동적으로 또는 갈취형으로 금품이나 향응을 받으면 파면이나 해임된다.
파면되면 이후 5년 동안 공무원으로 임용될 수 없고 공무원연금과 퇴직수당도 절반이 깎인다. 해임 처분을 받으면 이후 3년 동안 공무원에 임용될 수 없고, 공무원연금과 퇴직수당의 4분의 1이 삭감된다.
일각에서는 내년 9월부터 시행되는 ‘김영란법’(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금지에 관한 법률)과 함께 공직 사회를 투명하게 정화하는데 크게 이바지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철밥통’이라던 공직이 자칫 100만원에 죽을 수도 있는 현실을 맞은 것이다. 그동안 공직사회가 국민들에 보여준 행태는 수억 수천만원을 받고도 ‘직무와 연관이 없다’고 뻗대든가, 아니면 ‘빌렸다’, ‘누가 준지 몰랐다’, ‘나중에 돌려주려 했다’ 등 뻔뻔한 변명의 극치를 보여줬던 만큼 자승자박(自繩自縛)이다.
하지만 분명 100만 원이라는 사선(死線)이 근본적 해결책은 아니다.
불현듯 故 남평우 국회의원이 생각난다. 그는 현 남경필 지사의 부친(父親)으로, 버스업체를 경영하다 제14대와 제15대 총선에서 연거푸 당선된 재선의원이었다. 아쉽게도 15대 임기중 병마에 시달리다 생을 마감했다.
생존에 그는 새내기 국회 출입기자였던 필자에게 가끔 사석에서 ‘대한민국이 깨끗하고 투명해지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라고 묻곤 했다. “공무원이 깨끗해져야지요”라고 답을 하면 “공무원을 어떻게 깨끗하게 하지?”라고 되물었다.
20대 기자가 “월급을 많이 주면 되지요”라고 응답하면 故 남 의원은 “국민소득 랭킹 10% 안에 공무원이 있어야 투명해지는데, 그러려면 국가가 잘 살아야 해”라고 읊조렸다. 어렴풋하지만 그후 故 남평우 의원은 공무원들의 처우를 개선하기 위한 법개정도 추진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공직사회의 부정부패가 어디 어제오늘의 이야기인가?. 해답은 이미 오래전에 나와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다.
공무원이 직무에 연관된 사업자나 인허가 과정에서 검은 돈의 유혹에 빠지지 않도록 확실한 처우개선이 우선이다. 하지만 현재 국가재정이나 국민 정서상 수용되기 어려운 과제다.
그렇다면 차선책이다. 인사혁신처가 내놓은 공무원 징계령 시행규칙 개정안이 아마도 법준수를 앞세운 차선책이 아닌가 싶다. 법을 집행하고 시행하는 공무원인 만큼 법 준수는 당연지사이자, 책무다.
남은 건 실천이다. 강력한 처벌 규정을 만드는 것보다 제대로 시행하고 이를 지키는 것이 더 중요하다. 국정감사 때만 되면 공무원의 뇌물수수 건은 단 한 해도 거르지 않고 도마 위에 오를 정도로 상습고질화되어 있는 마당에 당장의 실천을 기대하기는 어불성설일지 모른다. 하지만 ‘변해야 산다’는 강한 의지만 있다면 못할 것도 없다.
강력한 부패 척결 의지를 갖고 모든 비위를 철저히 조사하고, 엄벌하는 동시에, 공무원이라는 자부심만 심어준다면 가능하다. 100만원에 목숨을 거는 공무원은 아무도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만약 100만원에 밥줄을 내려놓는 공무원이 있다면 그는 애초부터 공무원이 아니었어야 한다.
‘공무원=철밥통’이란 등식을 이제는 먼 옛이야기로 접어두고, ‘공무원=청백리’라는 옛 선조의 가르침을 실천강령으로 삼는 공무원을 이제는 곁에 두고 싶다.
정일형 지역사회부 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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