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어려운 법령용어 좀 더 알기 쉬워졌나요

1.jpg
어려운 법령용어 좀더 알기 쉬워졌나요?

 

‘징구하다’는 말이 있습니다. 보자마자 무슨 의미인지 바로 아는 분도 있을 것이고, 그 뜻을 어림잡아 짐작하는 분도 있으실 것이며, 무슨 의미인지 전혀 모르겠다는 분도 있으실 것 같습니다. 한자를 보면 ‘징구(徵求)하다’인데, ‘무언가를 내놓으라고 요구한다’는 뜻이 되겠습니다.

 

그런데, 일상생활에서 ‘징구하다’는 말을 사용하시는지 모르겠습니다. 아마 ‘내게 하다’나 ‘받다’라는 표현을 주로 쓸 것이라 생각이 됩니다. 하지만 법령에서는 ‘징구하다’는 표현이 종종 사용되었고, 아직도 일부 법령에는 남아 있기도 합니다.

일반적으로 사용하지도 않는, 어려운 ‘징구하다’라는 말을 ‘내게 하다’처럼 바꾼다면 더 많은 사람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법제처에서는 이처럼 어려운 법령 용어나 문장을 보다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정비하는 ‘알기 쉬운 법령 만들기’ 사업을 지난 2006년부터 추진하고 있습니다.

 

그동안 법제처에서는 한자로 쓰여 있던 법률을 한글로 표기하고, 어려운 한자어나 생소한 용어를 쉬운 한자어나 우리말로 정비하며, 어색한 문어체나 번역체 문장을 일상생활에서 사용하는 친숙하고 매끄러운 문체로 다듬는 등 1천여 건의 법률을 알기 쉽게 만들었습니다.

 

알기 쉬운 법령 만들기를 통해 개선한 용어를 몇 개 살펴보면, ‘구배(句配)’는 ‘기울기’나 ‘비탈길’로, ‘가각(街角)’은 ‘길모퉁이’로 정비하여 알기 쉽고 익숙한 표현이 되도록 하였습니다. ‘합의간주(合意看做)’를 ‘합의한 것으로 보는 경우’로 고치기도 하였습니다.

 

이러한 사업의 하나로 법령에 남아 있는 장애인을 비하하는 용어를 발굴하여 ‘정신병자’는 ‘정신질환자’로, ‘간질’은 ‘뇌전증’으로 정비하는 등 차별적 의미가 있는 용어를 정비하고, 아직도 법령에 남아 있는 일본식 용어를 발굴하여 ‘갑상선’은 ‘갑상샘’으로, ‘리어카(リヤカ-)’는 ‘손수레’로 바꾸어가는 등 일본식 한자어, 일본식 외래어 등을 쉬운 한자어나 우리말로 바꾸며, ‘안검’을 ‘눈꺼풀’로 정비하는 등 전문 분야에서 관행적으로 사용되는 용어도 지속적으로 발굴하여 개선하겠습니다.

 

올해 10월 9일은 569돌 한글날입니다. 법령 문장을 한글로 바꾸고 일상의 언어생활에 맞도록 쉽게 쓰는 작업이 이제야 이루어졌다는 것은 아쉬운 일이지만, 오늘이 한글을 사랑하기에 결코 늦은 시간이라고 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알기 쉬운 법령 만들기 사업이 국민 중심의 법률 문화를 조성하고, 우리나라 최고의 문화유산인 한글을 지키는 데 일조할 수 있기를 기대해 봅니다.

 

황상철 법제처 차장

© 경기일보(www.kyeonggi.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댓글 댓글 운영규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