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반생(後半生)에 접어들면서 소형 승용차 상당 비용이 입으로 들어갔고 종합병원 내 주요 진료과목을 두루 섭렵하고 있다. 심지어 응급실을 몇 차례 제발로 찾기도 했으니, 기록으로만 따지면 움직이는 종합병동인 셈이다.
만났던 대부분의 의사들은 말한다. 스트레스와 술, 담배를 줄이라고. 가능한 잠을 충분히 자고 규칙적인 운동을 하라고. 진료과목은 달라도 처방에 앞서 의사에게 공통으로 듣는 말들이다. 텔레비전에서 흔히 접하는 이런저런 건강 관련 프로그램의 패널들도 비슷한 말을 한다.
순서의 정도가 다를 뿐이다. 같은 말을 하는 한의사 친구에게 “그놈의 의사, 나도 하겠다”는 우스갯소리를 던졌던 기억이 있다. 의사들은 무엇보다 스트레스를 피하라고 권면한다. 스트레스가 신체 이상 징후의 주범이라는 말이다.
이를 악물고 일해서 생겨났다고 자위하는 잇몸 질환도, 이따금 경험하는 기분 나쁜 흉통과 어지럼증도 그리고 자고 또 자도 풀리지 않는 만성피로도 대부분 스트레스로부터 기인한다고 한다. 그러나 사회생활을 하면서 스트레스를 피할 수는 없는 법.
더군다나 늘 생각하고 긴장해야하는 전시(戰時)상태의 전시(展示)업무 특성상, 또 스스로에게 엄격해야 하고 미술주변에 세심한 주의를 기울어야 하는 큐레이터라는 직업의 성격상 이 녀석과의 공생은 피할 수 없다. 스트레스에 애써 스트레스를 주고 있는 이유다.
폰의 알림음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폰이 너무 조용하면 이따금 비번치고 열어봐야 안심이 되는 상황. 남들의 자랑질에 은근 스트레스 받으면서 의무적으로 눌러줘야 하는 ‘좋아요’. 동기화하려다가 아예 초기화시켜버린 일.
아내에게 보낼 답문자를 관장님에게 보낸 일 등 웃지도 울지도 못하는 별별 경험을 스마트폰 때문에 하지만, 이 모두가 싫지 만은 않은 현실이 또한 스트레스다.
베이비부머이자, 대표적인 교복 세대로서 ‘스마트’한 세상을 ‘엘리트’하게 살아내는 일이 쉽지 만은 않아 보인다. 또한 의사가 그토록 피하라는 스트레스를 애지중지 키우면서 손에서 놓지 않으려는, 스스로 스트레스를 벌고 있는 자신과 현세태가 마냥 아이러니컬하기만 하다. 과연 속절없는 세상이다. 하늘나라 잡스 아저씨가 고맙기도 하고 한 없이 미워지기도 하는 이유다.
박천남 성남문화재단 전시기획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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