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으로 세상과 소통 아이들 한뼘 더 성장하다
범죄와 우울, 소외의 그늘에 갇힌 채 자라는 아이들에게 악기를 주고, 음악을 가르쳤다. 이 사소한 미동은, 그러나 엄청난 파동을 불러왔다. 음악을 접하고 아이들은 급격하게 변화하기 시작했다. 그늘진 얼굴에도 미소가 번졌다.
난생 처음 ‘꿈’이란 것을 가지게 됐고, ‘희망’에 설레기도 했다. 1975년 시작이후, 40여 년이 흐른 현재, 30만 명이 넘는 베네수엘라 청소년들이 엘 시스테마를 거쳐 갔다.
이 곳 출신 음악가도 하나 둘, 생겨났다. 이들에게 음악은 단순, 활동이 아니라 아래로부터의 혁명이었다. 이후 엘 시스테마는 베네수엘라의 자랑이자, 전 세계가 배우고 싶은 모델이 됐다. 한국도 마찬가지다.
2009년 도입되기 시작, 여러 지자체에서 ‘한국형 엘 시스테마’를 실천하고 있다. 특히, 저소득 계층뿐 아니라 다문화 가정 자녀까지 아우르며 범주를 넓히고 있다. 작지만, 의미 있는 도전들을 되짚었다. 편집자주
“쉿~. 박자에 집중.” 지휘봉을 보면대에 ‘톡톡’ 두드리는 지휘자의 눈매가 매섭다. 흩어졌던 단원들의 눈에도 초점이 잡히기 시작한다.
여기저기 ‘끼익’ 거리던 악기음과 ‘웅성웅성’하던 소음도 일순간 멈췄다. 지난달 16일 <꿈의 오케스트라 부천, 놀라운 오케스트라> 무대가 열리던 복사골문화센터 아트홀은 언제 그랬냐는 듯 정적에 휩싸였다.
올해 중2인 세희(가명)는 부천 ‘놀라운 오케스트라’ 창립 단원이다. 횟수로 5년. 음악을 접하고 많은 변화가 있었다. 마음도, 생활도…. 입단 전 세희의 삶에는 ‘음악’이 없었다. 가난과 외로움만 있었다. 몸이 불편한 아버지를 대신해 동생들을 보살펴야 했다. 음악은 사치에 불과했다.
음악은 우연히 찾아왔다. 세희가 다니던 지역아동센터의 추천이 있었다. 처음엔 간절함이 없었다. ‘배우자’는 생각보다 ‘떼우자’는 의식이 더 강했다. 취향과 성격, 체격에 따라 악기가 선택됐다. ‘플루트’. 반짝이는 은색의 관악기. 운지에 따라 다른 화음을 내는 플루트는 한 번도 생각지 못한 방향으로 세희를 이끌었다. 매주 6시간씩 이어지는 연습도 재밌었고, 무엇보다 이 작은 악기에서 뿜어내는 선율이 좋았다.
오케스트라 단원 친구들과 함께 화음도 맞추고, 연습도 하며 웃음도 되찾았다. 소극적인 성격도 적극적으로 바뀌었다. 차츰차츰 실력이 늘면서 친구들에게 플루트 운지법을 전수하는 역할도 하고 있다. 음악이 찾아오면서 꿈이 생겼다. ‘막상스 라뤼’(Maxence Larrieu) 같은 세계 최고의 플루티스트가 되는 것. 아직은 멀고, 아련한 미래의 일이지만 ‘할 수 있다’는 자신과 열정만큼은 이미 라뤼다.
상호(가명) 역시 ‘놀라운 오케스트라’ 내 없어서는 안 될 캐릭터이자 바이올린이다. 세희와 마찬가지로 창단 멤버다. 하지만 친구들과 조금 다른 구석이 있다. 다문화 가정의 자녀다. 엄마는 중국인이다. 지역 내 다문화가족 모임에서 추천돼 오케스트라에 입단했다.
변화는 드라마틱했다. 입단한 지 6개월. 음악은 아이의 응어리진 마음까지 녹였다. 경계를 풀고, 스스로의 빗장을 열며 친구들과의 소통을 시작했다. 실력도 일취월장했다. 지금은 오케스트라의 수석 바이올리니스트로 활동 중이다.
누구나 실패는 있다. 그만큼의 불운도 반복된다. 문제는 실패와 불운을 어떻게 극복하느냐다. 음악은 그런 면에서 효과적이다. 자신은 물론, 타인의 마음까지 움직인다. 부천 꿈의 오케스트라 ‘놀라운 오케스트라’ 역시 이 같은 목적과 취지로 시작한 프로젝트다. 지난 2011년 창단돼 올해 5년째 운영 중인 놀라운 오케스트라는 이름만큼이나 놀라운 성과를 보였다.
지난해 부천문화재단이 ‘꿈의 오케스트라’ 우수운영기관으로 선정된 데 이어 한국예술영재교육원이 주최한 예술영재교육 거점센터로도 지정됐다. 지자체 문화재단 중에서는 유일하다. 입소문을 타며 단원도 늘었다. 60여 명으로 시작한 오케스트라는 현재 110명을 넘는다.
기성 오케스트라 못지않은 구성이다. 단계에 따라 ‘바흐반’(기초)과 ‘베토벤반’(고급)을 나눠 음악지도가 이뤄진다. 창단부터 현재까지 5년 넘게 채은석 음악감독이 지도를 맡고 있다. 전공 선생님의 도움으로 파트별로 연습하며, 단원 개개인의 기량이 배양되고 있다.
지난해 입단한 은정(가명)양은 “처음 들어왔을 때 악기 이름도 잘 몰라 불편한 점이 많았는데, 지금은 오케스트라 악기의 명칭과 소리도 구분할 수 있게 됐다”며 “한 곡을 떼고, 새로운 곡을 배울 때마다 설렌다”고 말했다.
입단은 취지에 따라 저소득층 가정과 다문화 가정 자녀를 중심으로 이뤄진다. 그렇다고, 일반가정의 자녀가 입단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7대 3정도로 일반가정의 자녀도 받고 있다. 한쪽으로만 너무 치우치다보면 의식적으로 게토화될 수 있는 탓이다. 때문에 ‘놀라운 오케스트라’가 추구하는 것도 ‘어울림’이다.
이런 활동들을 바탕으로 매년 5~6회 정도의 크고 작은 정기·상시 공연을 갖고 있다. 특히, 의미를 두는 것은 음악이 필요한 곳에 음악을 들려주는 일이다. 지역 복지시설과 기관을 방문해 소외된 이웃들에게 음악을 연주하면서 나눔의 의미를 배우고, 세상과 어울려 사는 법을 터득하고 있다. 무대에 오를 때마다 아이들의 몸도 마음도 한뼘씩 성장한다.
박광수기자
협동·배려·소속감 자연스럽게 배워…
작지만 큰 변화 시작
“음악을 통해 아이들이 자신을 사랑하고, 타인을 존중하는 아이로 변화되는 것을 지켜보면서, 제 스스로도 ‘변화하고 있구나’라는 생각이 듭니다.” 올해로 5년째다. 지난 2011년 창단부터 현재까지의 시간. 적다면 적고, 길 다면 긴, 이 시간. 채은석 놀라운 오케스트라 음악감독 역시 아이들과 함께 성장했다.
어떤 거대하고 유의미한 변화라기보다 ‘가치 있는 일을 하고 있구나’라는 의식에서 발현하는 보람이 크다. 처음, 채은석 감독도 시작하는 아이들과 마찬가지 생각이었다. “한국형 엘 시스테마를 고집하고 있지만, 한국의 현실에서 잘 정착할 수 있을까?”, “혹시 베네수엘라의 경우가 특별한 건 아닐까?” 의심은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그럼에도 확신은 있었다. ‘음악의 힘’에 대한. 결과적으로 확신은 적중했다. 음악은 아이들의 생활뿐 아니라 태도, 의식에까지 영향을 미쳤다. 심지어 꿈과 희망을 품게도 만들었다. 무엇보다 가장 큰 변화는 아이들이 사회와 소통하는 방법을 배웠다는 것이었다.
“처음 수업을 시작했을 때 대부분 아이들은 자신의 의자와 보면대만 들고 왔어요.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친구 의자도 놓아주고, 보면대 높이도 조절해주기도 했어요. 이건 작지만, 큰 변화의 시작이에요. 사회로 비유하면 자기 목소리만 내는 게 아니라, 타인의 목소리도 존중할 줄 안다는 의미니까.”
지도의 핵심은 소통이었다. 여러 의미 있는 시도를 했다. 대표적인 것이 ‘Peer Teaching’ 이었다. 실제 베네수엘라 엘 시스테마 교육에서 활용하는 방법이었다. 서로가 서로에게 멘토와 멘티가 되어주는 교수법. 수요일 파트연습시간에 선배단원들이 배운 것을 후배단원에게 알려주며 스스로 복습효과를 얻고, 후배단원들은 부족한 부분을 채우는 1석 2조의 방법이었다.
이를 통해 합주의 기본인 협동과 배려, 소속감, 책임감의 가치들로 자연스레 체득됐다. 이렇게 지난 5년간 500여 명이 넘는 아이들이 놀라운 오케스트라를 거쳐 갔다. 지자체 대표적인 ‘꿈의 오케스트라’로 거론되며 벤치마킹 대상이 되고 있지만, 아직도 이룰 것이 많다는 것이 채은석 음악감독의 생각이다.
“베네수엘라 엘 시스테마가 성공을 거둘 수 있었던 데는, 정부와 지자체의 장기적이고, 전폭적인 지원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일회성에 그치면 안 되는 이유죠. 또 관객들의 관심도 필요합니다. 음악이란 것은 결국, 사랑을 먹고 전파되는 것이니까요. 아이들의 삶이 예술로 인해, 더 풍부하고 아름다워졌으면 합니다.”
박광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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